정혜숙 _ statement
‘발굴과 발견’은 2005년부터 시작한 세라믹 작업에 대한 애 집착을 되짚어보고 시간을 거슬러 출발점을 찾으며 기억들을 재구성하는 긴 여정을 명명하는 작업의 타이틀이다. 단순한 땅파기 놀이에서 발굴한 자기 파편들은 기억과 상상의 시작이 되는데, 그들은 어린 시절 내가 자라온 환경과 역사에 대한 열쇠이자 이야기가 되며 놀이도구가 되기도 한다. 자기 파편들을 향하는 나의 마음은 사뭇 진지하다. 그들은 단순한 호기심의 소재를 넘어 과거 시간과 현실을 이어주는 길이 되며 그 길에서 발견하게 되는 기억과 이미지는 변형되는 자기 파편들처럼 각각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자기를 변형하고 조합하는 과정은 마치 기억의 파편들이 서로 융합되다가 흩어져 또 다른 형태를 구성하는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그들의 모습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새로운 시점에 봉착해 또 다른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런 다채로운 변화와 유동적인 조형성에 깊은 흥미를 느끼고 세라믹이라는 소재가 갖는 고유성, 즉 물성과 변형 성들을 도입하여 입체의 오브제들을 새로운 차원의 평면으로 의도한다. 또한 순수한 조형물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파편들을 재구성하고 변형시킨 근간의 작업은 전형적인 형태의 틀을 벗어나 이질적인 매체, 즉, 초벌 도자와 회화, 자기와 조명으로 표현되는 드로잉 등을 통해 새로운 발상을 유도하고 독특한 조합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2005년에 시작한 세라믹 작업은 순수한 조형물을 시작으로 하여 2007년부터는 초벌구이 된 기성자기들을 변형하여 조명설치 작업과 입체평면 작업을 접목시켰다. 기성 초벌자기들은 작업에 사용되기 위해 기존의 실용성은 배제되고 새로운 형태로 재조합 됨으로써 우리의 뇌리 속에 있는 기존의 이미지와는 다른 조형성을 창출시킨다.
나에게 세라믹은 어린 시절 놀이의 추억과 어른이 된 지금의 현실을 잇는, 시공간의 이동 사이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데 그것의 성질을 보석, 빛, 부드러움이라는 단어들로 느낀다. 집 안 마당에서 무심코 흙을 파는 놀이를 하다가 마치 보물을 발견하듯 종종 발견되는 반들거리고 아름다운 깨진 사기 그릇 조각들은 나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커져가는 상상은 어린 시절의 나로 하여금 더욱 더 깊이 땅을 파 내려가게 하고 어디쯤인가에는 미지의 잃어버린 세계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꿈도 꾸게 해 주었다. 어린 시절 작은 파편들에 대한 노스탈지는 나를 다시 땅파기 놀이로 이끌고 있다. 어린 시절 막연하게만 바라고 꿈꾸던 세상을 캔버스 속에서, 이번에는 다른 형태로,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려 한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방식의 표현을 통해 이질적인 매체들을 재조합 함으로써 고정된 관념과 인식, 정의의 형식을 새롭게 전환하고자 하는 의도 또한 내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