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성을 답답하고 막막한 마음을 캔버스에 풀어냈다. 특히 아이들을 모델로 하여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책 읽는 소녀>는 챙이 있는 모자와 원피스를 즐겨 입던 큰딸 애향이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아기>는 연필로 스케치한 후 배경과 옷에만 연하게 물감을 칠한 투명 수채화이다.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자화상들과 달리 초상화 속 아이들은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해방 후 이화여자중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친척의 소개로 배화여자전문학교를 나온 열두 살 아래의 김창경과 만나 세 번째 결혼을 했다.
1950년 11월 3일 저녁, 이인성은 학부형과 술을 마시다 그만 통행금지 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경찰의 명령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자 말다툼이 벌등어졌다. 기분이 상한 이인성이 집으로 돌아와 외투를 벗고 있을 때, 집으로 찾아온 군복을 입은 헌병들이 밖으로 나오라고 소리를 지르며 공포탄을 쏘았다. 이에 나가려고 신발 끈을 매던 이인성에게 공포탄 대신 실수로 공포탄이 아닌 총알을 쏘았다. 6·25전쟁으로 어수선하던 시절이라 그의 죽음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유작전도 그가 죽은 지 4년 뒤 열렸다. 이렇게 천재 화가는 허탈한 죽음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