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사진은 보는 그대로 표현한다. 이것은 사진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초점을 흐리게 하거나 장노출을 제외한다면 사진은 대상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매체일 것이다. 게다가 아날로그 사진은 촬영 후에 보정이 어렵기 때문에 사실성을 더 강조한다. 또한 카메라는 기술적으로 기울어져 보이는 건물마저도 바로 세우고 왜곡된 사물도 원래의 비율로 재현할 수 있다. 물론 수차와 왜곡을 억제한 렌즈들과 대형카메라가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사진 속 대상이 실제와 같은 것은 아니며 카메라의 파인더 글래스에 나타난 이미지는 변형될 수도 있다.

회화에서 원근법은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이나 사진은 카메라가 곧 원근법기계장치이다.

실험시리즈의 두 번째 작업인 ‘원근법실험’은 사진의 재현원리인 원근법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소실점에 이르는 가상선, 선에 의해 표현되는 형태는 이 실험을 이루고 있는 주된 것들이다.
가상의 선을 따라가는 실은 사진에 형태를 만들고 있는데 실은 재현대상이며 가상의 형태를 보여주는 장치이다. 이런 양면성은 이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실험의 마지막에 도달하면 실재와 허상은 동일체이기 때문이다.

실험은 점점 입체적으로 재현되는 대상을 보여준다. 이 방식은 회화의 눈속임과 닮았지만 목적이 다르다. 사실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허상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사진 속 사물들은 대상(오브제)이지만 의미 없는 것이다. 단지 어떤 가상의 형태에 도달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보조장치에 불과하다.

사진에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삼각형과 사각형의 사물이다. 모두 등변으로 이뤄진 이 완전한 형태는 소실점도 없고 방향성을 지니지도 않았다. 몇 가지 표면의 것들이 이런 성질에 저항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완전한 형태는 실제로는 완전하지 않다. 소실점을 지우기 위해 가상의 선을 그리고 사물을 수정해 카메라에 미리 상상한 형태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사진은 그 과정을 생략한 채 본 것 그대로이나 실제와 전혀 다른 사물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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