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의 순수한 감성과 상상력을 되찾으려는 바람이 나의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유년기의 순수함을 향해 발버둥치지만 이미 성인이 된 나는 의심과 무뎌진 감각 때문에 힘들어지고, 선명한 순수함의 실체를 찾지 못한 채 시야가 뿌옇게 흐려짐을 느낀다. 그런 과정 에서 기억에 비교적 구체적으로 남아 있는 동화 속의 장면들을 만나게 되었고, 머릿속에서 스쳐 가는 풍경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방법을 통해 천천히 되찾아 나가고자 한다.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동화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어렸을 때 느꼈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 갈등을 다시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익숙함과 낯섦, 편안함과 불편함, 모호함 등을 섬세하고도 복합적으로 느끼며 잠깐이나마 시간을 거슬러 가는 나의 긴 여정의 동반자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작업을 통해 동화적인 상상력을 불러내려 함과 동시에, 회화 안에서의 고유한 이야기 전달 방식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 화면에서 등장인물 간의 시선 교류, 서로에 대한 반응과 표정들을 예민하게 묘사하고, 회화의 고유 요소인 색, 선, 면 등의 균형과 변주를 통해 회화(스스로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가 어떻게 흥미롭고 신선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가를 연구한다.
투명과 불투명을 오갈 수 있는 속성을 지닌 수채화로 캔버스에 주로 작업한다. 그런 수채화의 물성을 통해 회화라는 매체의 솔직함과 개방된 해석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려 노력한다. 캔버스와 수채화의 반발작용으로 생기는 우연적인 효과들을 지우지 않고, 오히려 화면 안에서의 새로운 사건 발새의 작은 단서들로 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