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 인터뷰 날짜 : 2010.09.15
  • 인터뷰어 : 나비
  • 글 작성자 : 나비
  • 오후 무렵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온 빛, 한껏 게으름을 피우다 널어놓은 빨래, 정돈 되지 않은 책상 한 켠, 식탁 위에 놓인 먹다 남은 음식의 흔적...... 너무나 소소해서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순간을 차곡차곡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 사진작가 이정현, 그녀의 일상, 그러니까 그녀만의 일기는 카메라가 대신한다. 우리에게는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더 많이 사용되었던 카메라는 이제 소소한 일상까지도 특별함을 부여하고 있는지 모른다. 일종의 매체로써 디지털 시대를 대변하는 카메라이지만 이정현 작가의 사진은 아날로그의 맛이 듬뿍 난다.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담스럽고 깔끔하여 볼수록 시선이 머문다. 마치 누군가의 스케치북을 펼쳐놓은 것 마냥, 그림과도 같은 이미지의 단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작가의 목소리가 궁금해진다. 이토록 작은 순간에 작가는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혹시라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A little more or less than nothing.




    alittle17  44 x 56cm  inkjet-print  2008

    갤러리 룩스에서의 2010 신진작가 지원전에 이어 신한갤러리에서 <다시 보다>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연 이정현 작가. 안 그래도 볼 것이 너무나 많은 이미지 과잉 시대에, 그 중에서도 사진으로 치자면 가장 많이 넘쳐 나고 있는데 그녀는 구태여 ‘다시 보자’고 한다. 그러더니 지난 5년간의 기록들을 펼쳐 보였다. 사진을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갔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고, 여행하고, 머물렀던 순간들. 그 안에서 그녀가 말하는 ‘다시 보다’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다시 보다>라는 전시명은 지나치기 쉬운 소소한 순간들을 다시 봤으면 하는 의미가 제일 크기도 하지만 사진이라는 매체를 다시 봤으면 하는 의미도 있어요. 요즘 사진 전시는 대형 작업들이 주를 이루고 프로젝트 위주로 많이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그런 작업들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 그런 방식으로만 흘러가고 있는 것만 같아서 ‘사진’이라는 매체를 다시 한 번 바라 보자 라는 의미가 담겨 있죠. 사진이 세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매체라는 것을 되새기고 지나쳐왔던 사소한 것들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그렇게 다시 본 이미지들은 단순히 ‘예쁘다’라고 만은 말할 수 없겠다. 너무 조용하게 멈춰있는 순간이라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미지들. 강한 메시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극적이거나 강렬하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사진 속에서도 복잡한 생각들이 깊어질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 걸까,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 순간에 담긴 수많은 감정들을 담아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늘 볼 수 있는 평범한 것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안에서 수많은 감정의 겹이 드러날 수 있거든요.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 더 많은 걸 이야기하고 더 특별하게 보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제겐 더 깊게 다가와요. 그 순간들이 모여 전체가 되고 그러한 전부를 통해서 우리의 삶을 바라 볼 수 있으니까요. 인생은 이렇게 사소한 순간들이 뭉쳐져서 일어나는 거구나, 인간은 수많은 감정들을 지니고 있고 그것들이 응축되면서 살아가고 있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매트 페이퍼에 잉크로 인쇄하는 이정현 작가의 작업방식은 회화적인 느낌을 들게 한다. 매트페이퍼가 가진 전혀 광택이 나지 않는 속성 때문에 물감으로 그린 것 처럼 부드럽고 몽환적이다. 그렇게 힘이 쫙 빠진 듯한 흐릿한 이미지들이 비슷한 톤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구도와 색감들을 다시 불러모아 그녀에 의해 재해석된 순간들이 앞으로는 얼마나 더 많은 감정의 겹들로 이루어질까. 평생 자신을 잡아당기는 순간들을 계속 해서 찍는 것이 목표라는 그녀, 때문에 앞으로의 작업 방향도 거대한 포부가 있거나 계획적이지 않다. 방향성은 오직 하나, ‘계속 한다!’



    alittle34  44 x 56cm  inkjet-print  2010

    이정현 작가는 영향을 준 예술가들로는 자신의 지도교수이기도 한 필립 퍼키스(Phillip Perkis), 한평생 ‘선’만 그렸던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과 테이블 위에 놓인 물병과 컵만을 그린 조르지오 모란디(Morandi, Giorgio)를 꼽았다. 그 이유로는 엄청난 프로젝트로 명성을 얻은 자들보다는 평생 묵묵히 자신만의 작업을 고집스럽게 해 온 작가들로부터 감동을 받고 그러한 삶을 존경하기 때문이라고. 아마도 작업을 평생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기술의 완성 보다는 자신의 이상향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헤매는 과정, 그 행위 자체를 더 중시함이 분명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는 순간, 그것은 이미 예술가로써 끝난 것이리라. 정답이 없는 질문에 계속해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이정현의 모습이며 그녀가 사진을 찍고, 또 찍는 이유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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