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작가

작가 인터뷰

윤현정
비닐에 담긴 영원성에 대한 욕망
2010.08.06

인터뷰 날짜 : 2010.05.28
인터뷰어 : 나비
글 작성자 : 나비

거 참 잘 그렸다. 흐트러짐 하나 없이 어쩜 이리도 꼼꼼하게 그려댔을까. 멀리서 보아서는 마치 사진 같기도 한 그림, 바로 윤현정 작가의 작품이다.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이라는 기법으로 사물을 묘사하고 있는 윤현정 작가는 과일, 인형, 보석 등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을 실재 사이즈보다 확대해서 캔버스에 옮기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사물들은 투명한 비닐에 싸여 있다. 그냥 그려도 될 법 싶은데 그녀는 무슨 이유로 유독 이렇게 비닐에 싸인 사물들을 그리는 것일까.

“비닐은 평소에 제가 잘 활용하는 소재입니다. 무언가를 사면 새 물건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 손 때묻기 전에 항상 비닐 속에 넣어두지요. 구두를 사도 그냥 신발장에 넣어놔도 되는데 며칠 동안은 비닐에 쌓여서 방안에 있곤 하죠. 손 타는걸 별로 안 좋아해서 생긴 저만의 작은 습관에서 시작된 거예요. 그렇게 저의 개인적인 생활에서 보여지는 것을 표현하면 좋을 것 같아서 비닐을 선택하게 됐어요.”

그렇게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소재에 비닐이라는 것을 씌우면서 윤현정만의 작품이 되었다. 그녀는 그것을 자신의 소유욕 혹은 집착의 연장선이 라기도 했는데,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 대부분이 선물 받은 물건들이라 더욱 그렇게 느낄지도 모른다. 자신의 소유물이 늘 그렇게 변치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것은 비닐이라는 얇지만 강한 소재를 통해 영원성을 가진다. 그녀는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소유할 수는 없지만 영원했으면 하는 바램을 과일로 의인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포도, 바나나의 묶음을 보면서 여러 송이가 모여 하나를 집단을 이루는 것처럼 느껴졌다며, 섬세한 붓질로 탐스러운 과일을 그려냈다.

Rose & water drops 145.5 x 112.1cm oil on canvas 2010

윤현정 작가의 작품 중에서는 곰 인형 시리즈가 참 눈에 띈다. 보송보송한 털을 만져보고 싶게 만드는 곰돌이. 작가는 이런 곰인형들에게 생명력을 부여하여 꽃과 과일도 함께 그리거나 사람처럼 안경을 씌우기도 했다. 그녀의 첫 번째 개인전 <비닐 속, 영원한 그것>에서 작품 못지 않게 인기가 있었던 것이 바로 작품에 등장하는 곰인형들이었다. 작품의 실재 주인공(?)들이 비닐에 포장 된 채로 전시장에 놓였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귀여운 곰인형들이 작가가 직접 만든 것이라 하는데, 그림 그리는 솜씨 못지 않게 손재주 역시 남다르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곰 인형, 그래서인지 더욱 갖고만 싶어진다. (앗, 작가가 말했던 소유욕이 이런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이번 전시를 통해서 나라는 사람을 다시 되돌아 봤다’는 윤현정 작가는 첫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여러모로 고생이 많았던 탓에 아쉬운 점도 많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묘사하는 것에만 치중을 하다 보니 디자인적으로만 보이지 않을까 염려하여 더욱 보완하고 발전시켜려 하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앞으로 그림의 소재는 크게 변하지 않겠지만 결국 방법적인 면에서 좀 더 회화적으로 풀어나가면서 어떻게 변화를 줄지 모색 중이다.

Spider jewelry #1 162.2 x 130.3cm oil on canvas 2010

“다른 장르에 대한 욕심이 크게 없어서 그런지 앞으로 계속 회화로 하고 싶어요. 저는 이거(그림) 아니면 아무것도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때로는 압박감처럼 파고 들 때가 있어요. 가끔씩은 그림 말고도 다른 것을 잘 하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거든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거에 대해서는 부러움을 갖잖아요.”

흠, 그런데 왜 이것이 행복한 고민처럼 들리는 걸까.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 가장 좋아하는 것을 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직업이 아닐까. 자신이 가장 몰입하고 빠져들 수 있는 그림 안에서 늘 순수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윤현정. 오늘 역시 꿈꾼다, 영원성에 대한 욕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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