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작가

작가 인터뷰

김주수
잇다+ 잊다+ 있다
2010.01.25

인터뷰 날짜 : 2009.09.10
인터뷰어 : 나비
글 작성자 : 나비

한 소녀가 자신의 가슴에 목걸이 모양의 상처를 발견하고 그 상처를 지워 버리기 위해 갖은 방법을 찾는다. 그러던 중 거울을 보며 가슴에 난 상처와 거울에 비친 그 상처를 이어 보게 되는데...반복적인 이음의 과정을 통해서 그녀는 점점 자신의 가슴에 난 상처를 잊어 가게 되는 듯 해서 후련함을 느낀다. 그녀는 몹시도, 예전 사랑이 남긴 그 상처를 지우고 싶다. 그래서 그녀는 잇고, 또 잊는다. 마침내 그녀의 가슴에 난 상처와 거울 속의 상처는 이어지고, 그녀는 이어진 상처들을 뜯어 거울 속으로 밀어 넣어 버린다. 어떻게든 소녀는 자신에게 상처를 남긴 그 추억, 그 사람들을 없애고 싶었다. 모두 잊어 버리고 싶으나 그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이 목걸이 모양의 상처는 아직까지 그녀의 가슴에 남아 있다. 다만 이제 그녀는 잊으려는 잇기의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잊고 싶었던 그 기억들은 현재의 그녀를 있게 해주는 아름다운 기억이었다라고 회상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졌다.

인정하기 7x7.5x7.5cm 혼합재료 2008

동양화를 전공하고 프랑스의 브장송 미술대학에서 공부한 김주수는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드로잉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그녀는 이번 전시를 설명하기 전에 드로잉 북을 펄쳐 보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잇’고, ‘잊’으며, ‘있’는, 그 소중한 과정이 드로잉 북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이것이야말로 그녀의 솔직한 일기다. ‘일기를 그리다1-두 번째 피부’에 이은 ‘일기를 그리다2-상처일기’ 역시 그녀의 방에 몰래 들어와 일기를 훔쳐 보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 ‘일기’에는 마치 가슴에서 구름이 피어나는 듯한 ‘목걸이’ 모양과 유학생활을 하며 가장 많이 보았다던 ‘거울’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여기에 먹을 연상시키는 까만 색 선들로 열심히 바느질을 하기도 했다. 얇은 천을 통해 보여지는 중첩된 이미지들 사이로 그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상처를 잇고 잊으면서 그녀는 선으로, 오브제로 그렇게 일기를 그리고 있었다.

“제가 뾰루지가 많이 나서 항상 우울했어요. 그런데 그 외적인 상처가 감정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이 저한테는 흥미로웠거든요. 그래서 거기서부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뾰루지 있는 미운 얼굴을 인정하지 않다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 보니, 솔직한 마음으로 이 뾰루지가 다 없어지기를 바라면서 그려봤어요. 그런데 정말 없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안 좋은 것을 인정하는 것이 욕심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뾰루지가 없어지면서 그 다음에 상처 얘기로 들어갔어요. 마음의 상처가 빠져 나가는 과정이랑 뾰루지가 없어지는 과정이 정신적인 것들이 밖으로 나오면서 해결되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 성격들이랑 드로잉의 성격이 닮았어요. 드로잉은 머리 속의 작업을 어떻게 그릴지 생각하고, 시각적인 것이 구체적으로 나오는 과정이잖아요. 전시를 상처로 시작하면서 그 상처는 참 밉고 부족한 것들이지만 그 상처가 예뻐지기를, 긍정적인 생각으로 치유되기를 바라면서 작업을 했어요.”
사람은 저마다의 상처가 있다. 그 내용과 경험은 모두 다를지라도. 그것은 사람이기도 하며 기억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 김주수는 완전히 지워질 수 없는 사람과의 관계는 누구나 있을 것이라 했다. 그녀는 상흔이 되어 버린 상처를 한 땀, 한 땀 꿰매면서 견뎌내었다. 그러기에 ‘잇’는 것은 ‘잊’는 것이며 ‘잊’는 것도 ‘잇’는 것이다. 아프고 힘들었던 과정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녀는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치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싫은 비밀스럽고 사적인 상처일지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일, 어쩌면 우리에겐 그런 솔직한 시간들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치유의 과정은 한없이 진실해질 테니.

잇고 잊고 또.. 잇고 가변설치 혼합재료 2009

“연필로 드로잉 한 것들을 보면서 이런 느낌들이 더 입체적으로 나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봤어요. 가늘고 연약한 상처를 표현하면서 그 작은 것들이 모여서 강해지는 입체적인 드로잉을 펄쳐보이고 싶었거든요.”

피상적인 개념이 가시화되는 ‘드로잉’은 아주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그녀의 모든 작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발점이 된다. 날카로운 철사는 부드러운 바느질이 되었고 천, 보석 등 여러 혼합매체를 사용한 꼴라주 작업은 그녀만의 감성을 표현한 굉장히 여성스러운 작업이 되었다. 그녀의 작업은 아주 작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했을지언정 그 결과물과 의미는 거대하고 단단해 졌다. 노트에 또 허공에 수없이 끄적거렸던 그 생각들이 모여 이렇게 아름답게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은 ‘드로잉’만이 가진 강한 매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외수는 ‘장외인간’에서 “사라진 것들은 모두 그것들이 간직하고 있던 아름다움의 깊이와 동일한 상처를 가슴에 남긴다”고 했다. 상처가 깊을수록 그 아름다움도 더 가치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상처를 아름답게 간직하고자 하는 김주수, 그녀는 참으로 강해 보였다. 이야기가 끝났을 무렵, 그녀는 웃고 있었다. 드로잉 북 마지막 페이지의 상처를 이겨낸 소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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