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북경중앙미술학원 미술학 박사과정을 마친 수묵화가 신영호(1970)는 2005년부터 많은 프로젝트 전시회를 거쳐 2009년 중국에서 1회 개인전을 열었다. 추상으로써의 인체, 문자와 선조를 이용한 그의 작품은 인간의 정신적인 형상을 그려내는 동양화이면서 동시에 서양의 추상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수묵추상’이라 말할 수 있으며 장르의 범주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동양적 정신세계를 화폭에 담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인체ⅰ 21.5 x 30.5cm 도자 2008
신영호 작가의 초기 작업은 인체를 소재로 한 작업이었는데, 그 출발점은 서양의 추상주의에서 시작되었다. 추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서구 미술사에서 만들어진 것이어서 동양의 미술과 연결시키기에는 힘든 점이 없지 않다. 추상이란 산업혁명 이후 규정화된 사회, 즉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인간 자체를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기 때문에 반이성적, 반자연적, 반규범적인 운동이었다. 미술에서는 대상을 보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아니라, 대상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자연으로부터 벗어난 본질 자체를 보여 주는 게 현대 미술의 화두가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신영호 작가는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를 위해 인체를 작품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그는 사람의 신체에서 문자의 선과 구조를 추출하고, 하나의 획이나 선처럼 보이는 핵심적인 요소를 찾아낸다. 그러고 나서 그의 작품에 남는 인체는 하나의 상징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정신적인 내용과 형상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사람과 나’라는 작품에서 보듯, 그의 작품 속에는 소외된 인간의 고독, 부조리, 무의식, 관념적인 공간, 공간의 재구성이 굵고 강렬한 수묵의 표현을 통해 자연스럽게 동양적인 메시지로 연결된다. 동양적인 거친 수묵의 붓 터치가 만드는 이러한 이미지는 서양 미술의 재료로는 표현할 수 없는 먹의 표현, 번지는 효과를 통해 화면 전체에 심오한 파장을 일으켜 유기적인 추상의 세계와 연결된다. 그의 이런 추상은 우연에 의해 탄생되는 즉흥적인 작품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수련을 통해서 면 공간 하나하나를 선이 지나게 하고, 이런 공간들의 미묘한 차이에 의해 리듬과 변화를 고려한다. 그에게 이러한 미학적 근본을 제공하는 것은 옛 대가들의 서예에서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일맥상통하는 부분을 획득하는데 있다. 그리고 그것을 현대인의 감각에 어울리게 재창조하는 것이 바로 신영호 작가의 노력이다. 예를 들어 그는 당나라 때 ‘장옥’이라고 하는 사람이 쓴 처서와 80년대 현대작가가 했던 추상작업에서 공간에 대한 안목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을 잡아내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승화해 낸다. 때문에 그의 이런 오랜 연구와 수련이 작품 속에서 조용한 울림으로 퍼져나가는 멋을 느낄 수 있다. 동양의 회화와 서예는 선의 미학을 함축하고 있다. 한국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던 신영호 작가는 서예의 선에 대한 연구를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가 추구했던 추상과 동양철학에 바탕을 둔 필묵정신은 밀접한 관계가 있었고 그의 심미관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그는 화폭에서 선의 리듬과 역동적 에너지를 동양철학의 기(氣)가 흩어지고 모이는 원리로 보았다. 따라서 그의 작품 ‘문자향’은 선조의 리듬, 중층구조, 그리고 허와 실의 공간인식에 의한 생명의 근원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이런 작품에는 수묵에 의한 깊이감 있는 배경이 더욱 묘한 상상을 이끌어 낸다. ‘새’에서는 서예적 필치와 리듬감이 새로운 기호나 상징을 만나 전혀 다른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수묵추상을 추구하는 신영호 작가의 이러한 연구는 다양한 시도를 주저하지 않게 하는데, 그는 지금 새로운 매체에 접근하고 있다. 도자를 이용한 미술인데 그가 찾고자 하는 표현과 연관성이 많은 점을 알게 되었다. 흙, 유약, 그리고 안료는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반액체 상태가 되었다가 서서히 식으며 도자가 된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재료들이 혼합되어 화학적인 반응이 일어나는데 의도하지 않은 즉흥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그는 이러한 우연 속에서 수묵에서의 표현들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그는 도자 작업을 통해 수묵정신의 의미를 역추적해 보고 있다. 즉, 물성에 대한 운용과 우연성은 수묵의 특성과 매우 상이하지만 형식과 기술의 문제와 함께 표현과 감수성의 문제는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그는 느꼈다. 회화 안에서의 조형인식과 전각에서의 조형인식은 비슷한 부분들도 있고 다른 개념들도 있지만 그런 부분들을 자신의 그림으로 승화하려는 시도이며, 종이가 아닌 도자기 판에다 그렸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이런 작업에 기대가 모아지는 것은 현대 한국 수묵화의 미래가 그의 말처럼 오히려 고전의 연구를 통해 더 밝아질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신영호 작가가 처음 수묵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사람들은 우선 수묵화에 대해 고루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전시공간도 적다고 여긴다. 수묵은 고루한 방식, 유화는 새로운 것이라는 도식적인 생각이 팽배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사람들은 쉽게 그의 ‘수묵추상’에 대해 예술적 범주를 논하게 된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작가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형식으로 구분 짓는 것보다, 작품의 진실성과 작가가 표현한 것이 어느 정도 깊이 있게 다가오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사실 동양화에는 구상과 추상의 구별이 없다. 그것은 동양화라는 것 자체가 구상이기도 하지만 추상적인 면을 함께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나라 소동파가 시에 대한 경지를 얘기하면서 말한 ‘사여비사(似如非似)’ (닮음과 닮지 않음의 온화한 경지가 최고의 경지)를 신영호는 자신의 수묵추상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깊은 동양정신의 목표라고 했다. 이런 그의 진실성은 서예 공부를 위해 중국으로 가게 하는 힘을 스스로에게 주었고, 2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루 2시간 이상씩 서예 연습을 즐거이 하게 했다. 그 만큼 그의 중국 생활은 서예에 대한 연구와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했다. 그러나 2009년 중국에서 개인전을 가졌지만 사실 중국 미술계에서 추상 작품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것은 문화혁명 이후 전통은 타파되어야 할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중국인들 스스로 전통에 대한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분위기라고는 하지만 아직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다. 이런 복잡한 분위기 속에서도 신영호 작가의 작품은 전통적인 서예에 바탕을 둔 형식과 동양적인 정신의 맥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새ⅠⅡ 95 x 96cm 수묵 2009
이처럼 신영호 작가는 유행을 쫓아가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미술을 하고 있으며, 아직도 그는 수묵에서 무궁무진한 표현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는 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학교생활에 충실했고 올해 그 과정을 마쳤다. 이제 그는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할 것이다. 중국이든 한국이든 지금까지 연구한 자신의 형식과 내용을 표현해 내는 것과 진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때문에 그의 진지하고 열정적이었던 삶만큼이나 예술적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