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작가

작가 인터뷰

김봄
지도를 그리다
2009.10.19

인터뷰 날짜 : 2009.07.13
인터뷰어 : 나비
글 작성자 :

조용할 틈이 없을 만큼 다이나믹하다. 사람이 많은 것만큼이나 사건, 사고도 많다. 변화도 빠르고 그에 대한 흡수도 빠르다. 넘쳐나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사라지는 것들도 많다.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가 공존한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며 동시에 너무나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공간, 서울. 거기에 김봄이 그린 지도가 있다.

광화문 194 x 130cm 캔버스에 먹, 아크릴릭 2009

김봄은 서울 일대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다. 아니 ‘지도’를 그린다는 말이 더 어울리지 모르겠다. 그것은 특정 지역에 대한 시각적인 정보를 담고 있거나 축척이 반영된 지도가 아니라 그녀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지도이다. 그녀가 찾고, 걷고, 바라보았던 풍경들과 그 공간에서 일어났던 무수한 이야기들이 지도의 형식을 빌린 평면 위에 여기 저기 흩뿌려져 있다.
‘스페이스 아침’과 ‘관훈갤러리’에서 선보였던 ‘조립된 산수’ 시리즈는 전통적인 산수화에서 보여지는 여백의 미나 자연을 관조한 풍경들이 아니었다. 지형적인 특성 보다는 오히려 지역적인 이야기들을 표현한 지도에 가까웠다. 그녀는 각각의 장소들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모아놓기도 하고, 흩어 놓기도 하고, 순서대로 늘어 놓으면서 재배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첫 번째 개인전에서는 자연은 어떠한 시점에서 관찰되어지나 하는 의문점에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동일한 시간, 공간 안에 있어도 각기 다른 곳을 보고 몸으로 지각하는 세계관 또한 다양하잖아요. 그 흩어진 시선들을 저는 비현실적인 공간안에 재조합하어 ‘조립된산수’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그림지도’라는 타이틀로 고지도를 형식적으로 차용하거나, 실제 지형 앞에 있는 지도를 참고하여 ‘장소특정성’이 강한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그 곳’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회적인 이슈와 사건들은 시간의 축적에 의해 공존, 소멸되며 오래도록 가치가 기억된다고 볼 수 있죠.

김봄의 작품에는 서울을 소재로 한 만큼 용산 일대, 청계천과 시청 주변, 북악산이나 북한산 정경, 덕성여대와 영등포 주변 등 서울의 다양한 지역들이 그대로 반영돼 있으면서 장소마다의 특징들이 각각 담겨 있다. 그녀는 상당히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그 장소에 얽힌 무수한 이야기들을 오밀조밀하게 그려 넣었다. 도시를 품고 있는 산맥의 흐름들이나 한강을 가로지르는 각종 다리들. 빨래하는 아낙네들과 복개공사 기공식이 그려진 청계천의 과거와 현재. 서울의 중심에서 자주 보게 되는 수많은 정치 사건들의 모티브들… 이 모두가 그녀가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하고 바라는 그 지역의 이야기이자 역사들이다.

“요즘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주제로 덕수궁을 그리고 있어요. 굉장한 사회적 이슈이지만 직접적으로 들어내기보단, 차분하게 다루려 합니다. 영결식이 끝나고서도 덕수궁 근처에 몇 번 갔었는데 갈 때마다 많이 변해 있더라고요. 지금까지는 주로 서울을 주제로 그렸는데 좀 더 다양한 장소를 변화있게 그리고 싶고, 재료적인 측면에서도 지금보다 더 다양한 시도를 해 보고 싶어요.”

때로는 각종 이데올로기적 현실을 시사하는 서울. 서울이라는 지정학적 장소에 벌어지는 이 모든 정치적이고 사회적이고 일상적인 풍경들 속에 과거와 현재의 크고 작은 역사의 사건들이 어우러져 있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서울을 살아 가고 있다.

용산 227 x 181cm 캔버스에 먹, 아크릴릭 2008

진정한 화가라면은 유행을 타지 않고 자기 세계를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김 봄. 사진이 처음 나왔을 때 ‘이제 회화는 죽었다’라고 했지만 회화는 여전하지 않냐며 아날로그적인 회화의 매력을 이야기하는 그녀를 보면서 다시금 회화의 진전성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김봄은 말했다. 화가는 현재를 살아가면서 그 시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금껏 서울의 모습을 그려왔듯이, 앞으로도 다양한 장소들에서 펼쳐질 그녀만의 동시대적인 이야기들이 사뭇 궁금해진다. 그녀는 또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 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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