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일상 속에서 다양한 비약을 종횡무진 감행하는 백경호의 농담에 대하여
백경호의 회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복잡한 플롯이다. 그가 구성한 화면은 마치 소설이나 협주곡이
그런 것처럼 다양한 요소가 혼재하며 상이한 층과 굴곡들을 만든다. 더 자세히 보면, 혼재의 느낌이 강한 것
은 구성 요소들 간의 단락 때문이다. 작가는 종종 하나의 화면에 원근법적 구도와 평면적 화법, 원색과 탁색,
기하학적 형태와 우연한 물감의 흐름, 애매한 추상적 표현과 만화처럼 단순한 캐릭터 등을 함께 배치한다.
그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이런 상반된 것들 사이를 넘나드는 비약의 산물이다. 작가 자신도 이를 ‘넌센스’라
고 부를 때가 있는데, 그럼에도 그는 이런 혼란한 전개를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낸다. 회화에 통일감을
주는 것은 특정하기 힘든 절묘한 균형이다. 아마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 – 평소 대화에서는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시각적 서술에 있어서는 – 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소설에 비유하기도 했지만, 백경호의 회화는 형식 실험에 그치지 않고 실제 일상에서의 이야기를
종종 반영한다. 그 내용은 고단한 삶의 경기장에 난입한 망상, 작가의 작업실에서 생긴 돈 문제, 혹은 스마
트폰이 있는 지하철 풍경 등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단절된 것들의 공존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최근 관심
사들 중 하나인 디지털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그것 자체의 근본 원리가 아날로그의 연속성과 대비되는
단절을 전제하기도 하지만, 디지털 사회로의 급속한 전환과 함께 변화하는 삶의 방식들과 증가하는 문화적
복잡성도 어떤 비약을 암시한다. 이는 회화를 하는 예술가에게도 고민을 안기지만, 그 밖의 수많은 사람에게
도 영향을 주는 시대적 현실이다. 작가는 이처럼 일상적 삶의 모습을 한 보편적 비약에 주목하며, 다시 그
내용을 회화적 언어로 바꿔 농담처럼 제시하곤 한다.
농담은 그 내용이 뻔한 부조리를 담고 있음에도 공감을 낳거나, 혹은 현실적 난관을 가볍게 우회하는
말로 안도감을 줄 때 웃음을 낳으며 성공한다. 갈수록 복잡하고 수상해지는 현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공감할
만한 넌센스는 사방에 많다. 그러나 그것을 희극적 대상으로 삼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사회나 개인
이 실제 경험하는 단절과 부조리는 종종 비극으로 이어진다. 이는 작가가 작업 제목에도 썼던 말처럼 사생
아를, 즉 사소한 의미로든 심각한 의미로든 버려진 것으로 낙인 찍힌 불행한 존재들을 낳는다. 백경호의 회
화가 빚어내는 혼란한 감각은 이런 시대상을 그리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그리고 비약과 넌센스를 회피하
거나 불편하게 조명하는 대신 오히려 심화하며 즐기는 감각을 통해, 그는 시대적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선 굵은 농담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