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 작가명 : 윤병주, 사진  Inkjet Print 66 x 100cm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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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나는 이태원, 우사단로 10길에 살고 있다. 그 길 중심에는 이슬람사원이 자리 잡고 있다. 우연히 사원 앞에서 물총을 든 아랍소년을 보며, 나는 수많은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날 이후로 매일같이 카메라를 들고 종군기자인 마냥 좁은 골목길을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어느 날 동네 가꾸기의 일환으로 그려졌을 괴상한 벽화 앞에서 무슬림 남자 두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절박한 마음을 담아 학교 과제를 운운하며 사진 한 장을 구걸하던 나에게 뉴욕 양키스 모자를 쓴 무슬림이 말을 건넸다. “그런데 너, 여자랑 섹스는 자주 해?” 순간 머릿속은 뒤엉키듯 복잡해졌지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당연하다고 둘러대고, 딱 한 번 셔터를 눌렀다.

이 작은 동네에서 나는 거대한 담론들과 코드화 된 이미지 등을 분주하게 찾으려 했지만 사실 그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아니 어쩌면 애당초 여기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토록 역설하려 했던 그것들은 오히려 내 머릿속에만 있었다. 이제 나는 열혈 기자에서 구경꾼의 자리로 이동한다. 나는 그런 구경의 자세를 고수하며 알라딘의 요술램프와 서울 뚝배기를 섞어, 뚝배기를 비비면 지니가 나타나는 장면을 기다린다. 그것들은 특별히 서사적이거나 상징적이지 않다. 다만 불현 듯 등장하는 실재(Reality)를 마주할 뿐이다.

이태원에서 비교적 비싸 보이는 비빔밥을 먹었다. 약간 시큼하긴 했지만, 맛이 없지는 않았다. 한참을 먹다 숟가락 위에 올라온 브로콜리를 발견했다. 잠시 무슨 생각을 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특별히 이상하지는 않았다는 것 그 뿐이다. 비빔밥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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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평론
튜터링 첫 번째 미팅으로 가는 길 예외 없이 찾아온 두통의 진원지는 지난밤 음주의 찌꺼기로부터 몰려온 숙취이거나 이태원 뒷골목을 가득 메운 정체불명 구경꾼들의 구토유발 소음 분명 그 둘 중 하나. 관광천국 도떼기시장 한복판에 다문화 인간극장이라니!, 두 윤씨의 머리가 복잡하다. 그러나 윤병주의 작업분석과 추진력은 나의 성급한 걱정들이 기우였음을 명백히 증명하며 프로젝트를 마감하였다.

지난 8개월간 이태원 뒷골목을 밤낮없이 고담활보하며 완성한 윤병주의 그림에는 속단할 수 없는 궁금증에 대한 갈증과 관찰의 반목이 아슬하게 지나는 구경꾼의 미학이 가득하다. 1부 작업을 리뷰하며 우려했던 ‘타자화된 다문화이미지의 보도reportage’라는 진부함은 빛과 시간으로 무장한 극적 장치가 불러들인 반전 블랙코미디로 전복되고 이로부터 윤병주의 관찰은 확장이동하며2부작업이 시작된다. 출처를 명제할 수 없는 어설픈 휴머니즘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작업은 구경꾼과 대상에게 부여된 동등한 무게로 이태원랜드 구석구석을 조명한다. 어둡고 음습한 뒷골목은 더 이상 일방적인 보도의 대상이 아닌 현장드라마 주인공의 아우라로 전면에 등장하고 인물들은 관상용 타자에서 초대의 주체로 구경꾼을 움직인다. 사진을 잘 찍는 훈련(?)은 애초부터 필요 없었던 윤병주의 핵심과제는 ‘무엇을 바라보는가?’ 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구하는 것이었다. 중심을 상실한 광택뿐인 ‘구경’은 이태원에 차고 넘치는 짝퉁명품들과 같은 불쾌한 속임수일 뿐 ‘꾼’의 경지를 넘보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은 작업과정의 시행착오를 통해 동반 학습하였다. 수 차례의 끝장논쟁과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질문폭격에 윤병주가 보내온 최후응답은 우사단로 거창슈퍼를 점령한 그리스여신의 할로윈, 옆집 옥탑 방 차도르 여인의 온스타일, 도우미 미용실과 보광여관의 민주적 조우였다. 그가 새롭게 직조한 이태원 뒷골목에는 이제 주인도 외계인도 사라진 복합휴먼광장과 ‘다른’이 ‘다를 바 없는’으로 탈바꿈한 동네가 고스라니 남아있다.

작업과정을 통해 자신의 위치와 태도를 발견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자아도취의 유혹을 끊임없이 거세해야만 하는 쉽지 않은 싸움임에 분명하다. 지난 6개월간 윤병주가 보여준 불면의 갈등과 근성 충만한 투쟁은 그가 나에게 보내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윤&윤의 모든 여정을 마감하며 결코 친절하지 않은 수연씨에게 되려 훌륭한 거울이 되어준 윤병주에게 감사, 그리고 그간 우리들의 뜨거운 번민과 갈등, 썰(!)전들에 인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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