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하는 풍경 / 송은아트큐브
21세기는 이미지 복제가 무한히 가능한 디지털 인프라를 기반으로 출판물, 매스미디어,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매체의 이미지들이 과잉 공급되는 시대이다. 여느 때보다 고도로 발달된 오늘날 시각 매체는 대상을 얼마나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가에 머물지 않고 대상을 이상화시키거나 심지어 실존하지 않는 대상마저도 현실감 있게 제시한다. 재현에 있어 ‘실재(實在)하는 대상’ 즉, ‘원본’과 상응되는 사실적인 시각 정보는 이미지 구축에 있어 우위를 차지하나,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머리 속에 남는 이미지 전반은 결국 개개인의 지각경험과 기억에 의해 관념화된다.
강호연은 이러한 상관관계를 주목하여 우리가 흔히 동경하거나 이상적인 곳으로 떠올리는 장소 및 풍경 등의 이미지를 귀납법적으로 재현한다. 작가는 자신이 하나의 이상(理想)적인 이미지로 손꼽았던 북유럽의 오로라를 찾아가 막상 실제로 보았을 때, 자신이 간직해 온 이미지와 격차가 있음을 발견하고 생경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늘 보던 달력 사진의 오로라, 실존하는 오로라 그리고 자신이 개인적으로 직접 경험하고 기억하게 된 오로라와 같이 하나의 대상으로부터 무수히 다양하게 존재하는 이미지들로부터 현실과 이상을 구분 짓는 것이 매우 모호하다는 점을 주지하고 실재 대상의 이미지를 보다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보다는 그 대상이 무엇으로, 어떻게 느껴질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의 지각경험에는 어떤 대상과 유사한 감각 자극이 주어질 때 실제와 상관없이 바로 그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착각 작용이 있다. 작가는 일정한 주파수 스펙트럼을 갖는 백색소음에 속하는 일부 가전제품 소음을 빗소리로 착각하는 경우와 같이 하나의 이상적인 풍경으로 경험될 수 있는 시각, 청각, 촉각 등의 공감각적인 접근을 모색해왔다. 이번 첫 개인전에서 강호연은 스위스 융프라우(Jungfrau), 백사장이 있는 해변, 한 밤의 보름달, 백야와 오로라로 유명한 핀란드 라플란드(Lapland) 등 자신이 동경해 온 풍경들을 선보인다. 평범한 사무 공간으로 구성된 전시장에는 데오드란트, 셔츠, 이면지 등 일상의 사물들이 책상 위로 어지럽게 놓여져 있다. 곳곳에 설치된 망원경이나 아이폰 화면 등 하나의 시점을 통해 일상의 공간을 바라보면 현재의 시공간에서 기대하지 못한 새로운 풍경들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각각의 사물들로부터 실제와 유사한 시각 감흥을 줄 수 있는 바들을 탐색하고 이미지 상을 비추는 거울로 각 오브제들을 서로 교차시켜 하나의 완결된 풍경을 재현한다.
대상의 사실적 재현과 동떨어진 강호연의 풍경은 쉽게 인지되는 고정관념화된 이미지 재현과도 구분된다. 그의 풍경에는 서로 다른 사물들이 본래의 맥락과 상관없이 중첩되어 있으며 실재 대상과 상응하지 않는 간극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구조는 각자의 지각경험과 정서에 의해 본래의 이미지가 굴절 및 투영되어 주관적으로 관념화되는 과정과 닮아있다. 강호연은 이미지 재현에 있어 현실과 이상의 이분법적인 경계를 너머 확장 가능한 면모들을 탐색하며 지금, 여기 우리가 소망하는 풍경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