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 작가명 : 윤정희,  Copper wire 80x55x55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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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평론
글. 이선영 (미술평론가)


윤정희의 작품은 차가운 금속 선 으로 짜여 진 구조물이지만 부글거리는 듯한 뜨뜻한 생명의 기운이 있다. 그것들은 건강한 생명이나 이상적인 예술처럼 견고하면서도 유연하다. 그것들은 현미경 아래의 미생물체 또는 눈도 색도 없는 심해의 생물체처럼 보이기도 하며, 효모에 의해 잘 부풀려진 빵이나 잘 말려있는 솜사탕처럼 탐스럽기도 하고, 꼬마의 상상 속 유령이나 할머니가 처마 밑에 걸어둔 저장 야채 같기도 하다. 미세한 주름들로 가득한 그것들은 생명이 펼쳐지는 생성의 이미지와 다시 접혀지는 소멸의 이미지가 동시에 있다. 생성이든 소멸이든 변화 중인 중간 단계 같은 모습이다. 생성이나 소멸은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주기가 아니라, 변형이나 변태의 과정 중에 있다. 그 점에서 윤정희의 작품은 유기체적이다. ‘씨앗으로부터’라는 전시부제는 생명을 출발시키는 원초적 기질과 에너지를 응집시키려는 의도를 예시한다. 안이 훤히 들어다 보이는, 안팎이 구별되지 않은 단일 표면들의 변주는 유기체 특유의 주름들로 가득하다.
유기체의 주름이 새겨진 씨앗은 들뢰즈가 [주름]에서 말하듯이, 러시아 인형처럼 무한히 하나가 다른 하나에 감싸여 있다. 최초의 개체는 때가 되면 자신의 차례에 자신의 고유한 부분들을 펼치도록 호출된다. 그리고 하나의 유기체가 죽었을 때 이 유기체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말아 넣어지고 되 접히게 된다. 씨앗으로서의 작품은 유전자에 의해 입력된 정보에 따라 순차적으로 펼쳐질 여러 층위들을 공시적으로 보여준다. 공중에 매달려 있고 선반 위에 놓여 있고, 벽에 핀으로 고정되기도 하는 등, 작품마다 배열 방식은 다르지만 코바늘뜨기처럼 짜여 지는 구조라서 대칭형을 기본으로 변주 되는 식물 형태가 감지된다. 층층이 겹쳐지는 구조가 형태와 부피를 만든다. 학창 시절 청계천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한 얇은 동선은 전기를 통하게 하는 부품으로, 빳빳해서 형태가 잡히면서도 부드럽게 엮일 수 있다. 이 재료를 작가는 2009년 첫 개인전 때부터 계속 사용해왔다.
섬유가 얽히는 방식이 비슷하여 코바늘뜨기 같은 느낌이지만, 바늘 없이 손으로만 한다는 차이가 있다. 결합체들이 만들어내는 형태들은 기하학과 생물학을 교차시킨다. 첫 개인전에는 수편기를 사용하여 평면으로 판을 짜고 이를 다시 입체로 설치하였는데, 이후부터는 안쪽으로 동글동글하게 말리는 식으로 짜나갔다. 수직 수평의 좌표계를 벗어난 그것은 만물이 비롯될 내재성의 판이 된다. 인체의 형상이 있는 이전 작품에 비해 이번 전시작품은 보다 추상적이다. 씨앗이라는 은유를 통해 보다 원초적인 단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뭉글뭉글 덩어리진 형태는 어떤 감정 상태와 관련은 되지만 특정한 감정을 재현하지는 않는다. 형태 또한 어느 정도는 생각하고 시작하지만, 어디쯤에서 끝난다는 것은 확정되지 않는다. 원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예정된 궤도를 빗나가는 여정은 생물의 발생으로 친다면 돌연변이나 괴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변이 역시 유전자가 재조합되어 생겨난 새로운 유전적 구조처럼 형성될 뿐이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병리이든, 생명의 과정이라는 기본 메커니즘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손으로 금속선을 짜는 과정은 씨앗이 발아하여 성체가 되는 것처럼 점점 커지는 단계를 공유한다. 동질의 표면이 중첩되며 형태를 만들어가는 방식은 배의 발생과 유사하다. ‘한 올 한 올 고리를 엮어가며 형태를 생성해 나간다’는 방식을 통해, 존재보다는 되기에 방점을 찍는 방식은 여전하다. 인체가 등장하는 2009년 개인전 작품에는 머리를 몸 깊숙이 박고 움츠려 있거나 누더기처럼 기워진 인체 껍데기 형태를 통해 보다 직설적인 감정 상태를 전달했다면, 이번 전시작품들은 이전보다 모호한 형태지만 거기에 내재된 감성은 더 포괄적이다. 그러나 다섯 개의 주머니가 안쪽으로 겹쳐져 있는 이전 작품 [되어가다](2009)나 인체 형상 안에 또 다른 주머니들이 마치 내장처럼 보이는 작품 [내안으로 들어가기](2007)에는 지금의 방식이 예견되어 있다. 윤정희에게 존재가 아닌 되기는, 함입, 겹침, 접힘, 되접힘같은 과정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홀씨주머니 같은 것들이 선으로 이어져 군집을 이루고 매달린 작품 [becoming](2010)에는 요즘 몰두하는 작품과 동질이상의 관계를 가질 뿐이다. 이번 전시에서 여러 겹으로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는듯한 형상들은 원형질적인 생명력을 가진다. 부피가 큰 것은 매달리고 작은 것들은 선반에 죽 배열된다. 그것들은 미술품이 놓여 질 고정된 자리를 벗어나 벽과 천정, 바닥 전체를 총체적인 생태계로 삼아 자리 잡는다. 놓여 진 작품들은 기저 면에서 발생하거나 사라지는 느낌을 주며, 매달린 작품은 거미나 누에가 만들어놓은 섬유질 덩어리처럼 보인다. 도처에 편재하는 기관 없는 신체들은 또 다른 무엇과 접합하여 변신하기를 욕망한다. 성글성글해 보이지만 묵직하게 중력을 반영하는 형태들은 농축된 작업의 밀도를 가늠하게 한다. 발생 중인 동식물 뿐 아니라, 해체 중인 기관, 구름 같은 모습은 중심에 레이어가 집중되고 바깥으로 갈수록 밀도가 흐려지며 융통성 있는 외곽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온다.
연속되는 하나의 선으로 짜여 지는 윤정희의 작품은 선이 얽히는 방식을 파악할 수 있는 통일된 구조를 이룬다. 느슨하게 뭉쳐있는 섬유 같지만 하나의 선으로 짜여진, 일련의 순서와 방법이 관철되어 있다. 작품 형태의 원형으로 삼는 유기체는 전형적인 구조이다. 이 구조는 자율적으로 통제되는 체계적 전체를 이루지만, 변형의 가능성 또한 내포한다. 이 유기체는 작품이라는 유기체와 중첩된다. 반투명할 만큼 성글게 짜여 지기 시작하지만, 연장되는 운동을 통해 서로 다른 밀도로 성장해 간다. 그리하여 금속성 질료는 생명에 버금가는 질을 획득한다. 시간의 흐름을 타고 반복되는 노동으로 이루어지는 윤정희의 작품은 항상성의 유지와 변이라는 생명의 기본 과정과 중첩된다. 또한 작품들은 생명처럼 자유를 향해 도약하려 한다. 화이트헤드는 [과정과 실재]에서 생명이란 단순한 물리적 존속과는 달리, 자유를 얻으려는 노력이라고 정의 한다.
그에 의하면 생명이란 자극에 대한 반응의 독창성을 말한다. 복잡한 구조의 결절점 내지 교차점이 가득한 유기체(작품)은 결코 완결되지 않고 자신을 넘어서 창조적으로 전진한다. 그것은 자연처럼 시간과 공간을 연장하는 도식을 전제로 한다. 공간의 연장성은 연장의 공간화이며, 시간의 연장성은 연장의 시간화이다. 시공간의 얽힘 속에 유기체의 표면과 이면은 통합된다.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유기체 철학’을 통해 실재를 역동적인 과정의 기술로 대체한다. 이러한 관점에 의하면, 현실적 존재는 하나의 과정으로 나타난다. 거기에는 위상으로부터 위상으로의 성장이 있으며, 통합과 재통합의 과정이 있다. 최종적으로 완결된 느낌이 만족이다. 세계를 실재가 아닌 과정으로 보는 관점은 시간과 공간의 연장성(extensiveness)을 내포한다. 동시적 세계는 연장적 관계의 연속체로 파악된다. 연장적 연속체란 전체와 부분의 관계, 공통부분을 갖는 중복 관계, 접촉 관계, 그리고 이러한 원초적 관계에서 파생된 존재들의 복합체를 말한다.
이 연장적 연속체는 현실 세계로부터 도출된 사실을 표현하기 때문에 실재적(real)이다. 유기체 철학에서 연장성은 세계 내의 유기체들의 형태적 구조가 순응하는 보편적 형식이다. 연속된 체계가 집적되어서 생기는 형태이면서 동시에 유동적인 구조를 가지는 윤정희의 작품은, 본질과 현상, 실재와 과정이 분리되지 않는 하나로 만든다. 이러한 작품들은 철학사의 대표적인 대조 범주인 발생과 구조를 모순 없이 연결시킨다. 장 삐아제는 구조와 발생이 필연적으로 상호의존적이라고 본다. 발생이란 하나의 구조에서 다른 구조로의 단순한 전이이지만, 이러한 전이는 항상 약한 구조를 강한 구조로 유도하는데 이것이 바로 형성적 전이이다. 구조는 선험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변형들의 체계이다. 윤정희의 작품에서 반투명한 구조들은 내부의 공동(空洞) 을 보여주며, 공간들 사이의 밀도 차이가 잠재적인 운동감을 변이 가능성을 예시한다.
규모와 밀도의 차이는 있지만 절대적 시작을 찾기는 힘들다. 변형의 사슬은 시간과 공간을 가득 채우며 뻗어 나갈 뿐이다. 변화 또한 알고리즘같은 규칙에 따르며, 불연속적인 도약은 일어나지 않는다. 올이 풀려남으로서 생기는 연쇄 고리의 단절은 와해라는 재앙을 가져온다. 창조적 무질서를 향해 엔트로피를 늘려나가기는 하지만, 불모의 해체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둥글둥글 응집력 있는 형태들은 닫혀있으면서도 열려있다. 그것들은 빈틈없는 존재의 그물망을 이루면서도 포용력과 가변성이 있다. 변형은 차이를 통한 반복 속에서 이루어진다. 중요한 것은 무의식이나 몸 같이 완전히 코드화 할 수 없는 것들을 소통시키기 위한 새로운 변형 규칙의 고안이다. 이 새로운 변형규칙의 고안에서 주름과 구름은 주요한 모델이 된다. 주름과 구름의 모델을 통해 문명세계를 강압적으로 규정하는 격자는 자유로운 그물망으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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