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 작가명 : 김성국, 캔버스  유화 72.7 x 60.6c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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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평론
글. 박경린

시간은 기억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때문에 인간은 자기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남긴다. 김성국의 회화는 일상의 시간 속에 흘러가는 장면을 포착하여 화면 속에 고착시킨다. 평범한 하루 속에서 건져내는 일상의 풍경을 망각 속에 흘려보내는 것이 아닌 특별한 순간으로 전환시켜 영속된 시간 속에 다시 위치시키는 실험을 그림을 통해서 진행하고 있다. 얼핏 김성국의 그림을 들여다보면 사진의 미학에 닮아 있음을 발견한다. 사진은 기본적으로 '있었던 일'을 증명하는 도구로 기능하는 한편 '거기에 있었음'을 말한다. 또한 사진은 존 버거(John Peter Berger)가 지적한 것처럼 인간의 기억을 보완해 잊히는 것으로부터 대상을 구원한다. 김성국의 그림은 사진과 같이 현실 속에서 흩어지는 주변의 사건, 인물, 상황, 환경 그리고 때로는 그에 수반하는 감정의 모습을 화면 속에 담아낸다. 한편 지나가는 순간을 그려나가는 것을 통해서 상실해가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 혹은 주목받지 못하는 일상의 순간과 주변의 상황들에 시선을 머물게 한다.

그러나 김성국은 사진의 미학을 빌려오는데 그치지 않고 이것을 다시 전복시켜 관람자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첫 번째 장치로 미술사 속 한 장면을 불러들인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1503~06)나 <최후의 만찬>(1495~98년경)과 같은 도상의 이미지를 현재의 상황 속으로 끌어온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마태오 26:21)라고 그리스도가 말하는 순간의 놀람과 두려움을 그린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김성국의 '최후의 만찬 프로젝트'를 통해서 재창조된다. <아침>,<점심>,<저녁>,<술자리>라는 제목이 각각 붙여진 4점의 연작 회화로 이루어진 그의 그림에서 다 빈치의 만찬 속에서 구성과 내용 모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성되는 김성국의 연작에서는 원래의 그림에서는 조연이었던 제자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시 재현되어 등장한다. 그러나 주변인이었던 인물들은 각 화면의 중심에 놓이면서 주인공이 되고, 짧은 식사 시간 속의 놀라는 모습은 일상의 순간을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로 탈바꿈된다. 열두 제자들의 다소 과장된 움직임을 닮은 움직임과 선명한 색과 빛의 표현만이 이것이 흔히 일어나지 않은 비(非)일상의 순간이라는 점을 주지시킨다.

'수태고지 이후'는 김성국의 또 다른 연작 회화들로 기독교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순간 중 하나인 천사 가브리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예수의 잉태를 알리는 회화 속 장면을 빌려온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최후의 만찬 프로젝트에서와 같이 단순히 미술사 속 명화의 한 장면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인물들을 제거하고 비둘기와 같은 생물들을 제거해 공간을 재해석한다. 예를 들어 <수태고지 이후 2>(2010)는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의 베네치아파 화가 중 한명인 카르파쵸(Vittore Carpaccio)가 그린 <수태고지>(1504)의 장소가 등장한다. 카르파쵸는 수태고지가 이루어지기 직전 마리아가 자신의 방 책상에 앉아 누군가 오는 기척을 느끼는 순간, 천사 가브리엘이 그의 임무를 알리러 걸어가고 있는 역사적 사건이 이루어지기 직전의 미묘한 움직임을 담아낸다. 쾌청한 하늘에는 전지전능한 신이 한줄기 빛과 비둘기로 성령을 전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의 순간조차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망각 속에 스러지고,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는 시간에 대항할 어떠한 힘도 지니지 못한 채 정적 속에 잠겨 있을 뿐이다. 김성국은 '일어났던 일'을 그려낸 '가상의 공간'을 다시 불러옴으로서 사건의 장소이자, 과거의 장소를 일상적 공간의 장소로 탈바꿈시켜 일상의 삶과 삶의 공간에 주인공의 자리를 다시 내준다. 다시 생각해보면 수 없이 반복된 성령이 잉태되는 이 기적의 순간도 마리아라는 여성의 일상적 삶 속에 있었던 한 낮의 특별한 순간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유정이 만나는 날>(2009)은 최후의 만찬 프로젝트와 수태고지 이후 속에 나타나는 김성국의 관심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화면 속의 장면은 현실과 비현실이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미술관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자를 사진으로 포착한 듯한 이 풍경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속에 위치한다. 이는 두 가지 장치로 배가된다. 하나는 그림 속의 그림이, 또 다른 하나는 그림 속에 등장하는 두 인물간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먼저 그림 속의 그림은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의 수많은 회화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러나 이 그림은 없는 그림이다. 다 빈치가 그린 풍경의 일부분을 따서 크게 그려낸 가공된 풍경이자 회화다. 그러나 김성국은 이것을 실제 액자 속에 다시 그려 현실에 존재하는 그림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림은 다시 현실 속으로 들어온다. 현실과 비현실의 게임은 여기에서 끝나는 듯 하지만 두 인물 간의 관계 속에서 이질감을 느끼며 화면으로 다시 관람자를 끌어들인다. 화면 속 여성은 박제된 것 같이 고정되어 있다. 이 앞을 지나가는 행인은 관람자와 여성 사이를 빠르게 지나간다. 한 장의 스냅사진처럼 순간 포착된 듯 한 이 장면은 견고하게 고정된 여성과 불명료한 형태를 지닌 이 두 인물간의 극적인 대비로 인해 이것이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닌 작가의 의도 속에 놓인 공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이렇듯 김성국은 회화가 가지는 역사적 전통에 기대어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그것을 해체시키며 현재진행형의 회화를 만들어나간다. 순간을 포착해 흘러가는 시간으로부터 대상을 도려내고, 망각 속으로 잊히는 것으로부터 기억을 구원하는 그의 작업은 사진이 갖는 본질적 속성에 기대어 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순간들을 그려내는 것을 통해서 이미지를 붙잡아 두는 것에서 나아가 상상력을 통해 빈 공간을 채워나가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의 삶을 특별한 순간으로 가져간다. 이는 분명 일상의 삶에 대한 해맑은 애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며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상실감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이다.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영구히 긴 역사 속에서 언제나 주변인 일 수밖에 없는 현재의 우리가 김성국이 만들어내는 그림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바로 구원의 메시지 일 지도 모른다. 곧 망각으로 사라질 특별할 것 없는 순간도 화면 속에 박제된 순간처럼 시간의 강에서 건져져 역사의 순간으로 만들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그것이다. 분명 시간은 기억의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우리는 기록을 통해 시간을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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