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 작가명 : 김윤희, 장지  아크릴릭,먹 72.5 × 60.5cm 2012
  • 작품을 클릭하시면 큰 화면으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작가노트
경관은 인간이 감각기관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외부세계이며 보여지는 시각적인 것을 넘어선 체험된 경험을 통한 청각적 후각적인 존재로서의 대상이다. '가시적실체' 그리고 '그것의 다양한 재현'으로서의 경관은 인간의 '문화적 관정'의 산물로서 그를 통한 장소의 구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 작업은 현장을 직접 체험하여 실제의 자연을 또 다른 실재의 대상으로 재해석하여 그려진 산수화이다. 이런 조합된 산수는 장소가 가지고 있는 장소성이나 시간성을 인지한다. 그 장소에 맞는 공간 나눔은 작가의 경험한 체험에 의해서 변형된다. 체험을 통한 경관에 대한 숭고함은 경험하기 이전보다 훨씬 그곳의 아름다움과 숭고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며 동네속 집들의 모습을 포착하는 것이 단순한 인공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을 넘어 이 시대 풍경의 모습을 보여주는 진경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 속에서 흑백의 먹톤은 알록달록한 색면과 대비되어 의도적으로 구성되 자연과 인공이라는 두 공간의 충돌을 만들어주고 이를 통해 관객들은 실제의 풍경과 재구성된 풍경속에서 본인이 보여주고자 했던 두 공간의 조용한 충돌을 느끼게 된다.
또한 동네의 지명이 주는 경관의 모습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그 장소의 모습을 회화적 감동으로 담아낼 수 있게 하는 장소성과 인간과 오해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는 시간성 또한 제공해 준다.
장소성과 시간성을 확보한 작가는 그 속의 경관을 재구성하여 가상처럼 보이는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 낸다. 화가에 있어서 자신이 그리는 지리적 좌표를 제시하는 것은, 포착된 대상에 대한 관심이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찾아갈 수 있게 하는 지속적 관심의 대상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지속적 관심은 다양한 작품을 통해서 보여지고, 관람자는 체험된 작가의 삶과 감성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접기

작가 평론
글.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그림 그리는 사람이 그 그림의 지리적 좌표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동네의 번지수와 같이 명확한 숫자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김윤희에게 있어 그림 그리는 행위의 현장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가령 ‘부암동’이라는 제목을 단 그림은 ‘부암동 97’, ‘부암동 332’, ‘부암동 329’ 등과 같이 번지수를 붙여서 화가 주체의 시선이 머문 곳을 표기하는 섬세함으로 이어진다. 그는 서울성곽 안이나 부용정 등 서울의 문화유적지를 담았다. 평창동과 행촌동 같은 마을과 경남 남해의 바닷가 마을과 정선의 가수리와 같은 오지 마을도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그림들에 구체적인 이름을 적시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단지 풍경화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마을 자체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다.

김윤희의 마을 그리기 작업은 스케치 여행을 통해서 시작되었다. 그는 동학들과 함께 수시로 길을 떠났다. 학부 재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지난 수년간 전국의 곳곳을 다니며 현장에서의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려왔다. 그가 살고 있는 서울은 물론 백두대간 골짜기를 따라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마을을 발견하기도 하고 남해안을 따라 긴 여행을 하기도 한다. 그는 그곳에서 자연을 만나고 마을을 만난다. 그의 눈에 들어온 풍경은 언제나 따끈따끈한 현장 스케치로 옮겨진다. 자연을 대하는 화가의 마음은 그림을 대하는 관객의 마음과는 또 다른 법이다. 거대하고 위풍당당한 자연, 또는 소박하고 따뜻한 자연 그 모두가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인간으로 하여금 숭고를 되새기 게 하는 것. 이것이 자연의 힘이다. 김윤희는 그 자연의 힘을 아는 예술가이다.

김윤희는 그러나 자연 풍경만이 아닌 마을 풍경을 그린다. 그 풍경은 일일이 발품을 팔아가며 현장에서 사생한 실경들이다. 그는 스케치 여행의 현장에 존재하는 실재로서의 마을 풍경을 회화적으로 재현했을 뿐만 아니라 그 마을 자체를 자신의 마음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그는 여행을 통해서 만나는 풍경의 낯선 느낌을 자신의 감성 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으로 그림 그리기를 진행했다. 그 낯선 느낌의 한 가운데에 있는 것이 자연과 인공의 공존이다. 김윤희가 포착한 마을 풍경은 자연 속에 들어 있는 인공의 흔적들이다. 하나의 집은 그 자체로 완결된 우주를 담고 있다. 그 하나하나의 소우주들은 서로 닮은 모습으로 뭉쳐있기도 하고 서로 다른 모습으로 흩어져있기도 하다. 이질적인 소우주들의 결합은 하나의 마을을 만들고 그 마을은 필연적으로 자연의 품안에 자리 잡고 있다.

자연 속에 포착된 인공의 흔적을 드러내는 일. 김윤희의 회화 세계는 이 명쾌한 내러티브로부터 출발한다. 문명의 세계에 던지는 김윤희의 제안은 인간들의 서식처인 마을의 모습을 색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데 그 핵심이 있다. 그가 채택한 마을 풍경은 풍경을 지배하는 인공의 흔적들 가운데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집들의 집합체이다. 문명의 시원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집은 인류 문화의 깊이와 넓이를 가늠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러한 집들의 집합체인 마을 풍경을 바라보는 화가 주체의 시선은 의도적으로 조작된 풍경을 만들어냈다. 김윤희 풍경화의 차별성은 그것이 실경을 바탕으로 하되 화가의 감성에 의해서 특정한 영역이 선택적으로 조작된 정보 값을 가진 풍경이라는 데 있다. 그의 그림은 실재의 재현과 실재의 변용 사이에 걸쳐있다. 김윤희의 마을 그림은 실재 풍경을 나름의 규칙에 따라 정연하게 재현한 그리기와 그 풍경의 색채나 형태를 이질적인 요소로 변용한 그리기가 공존하는 그림이다.

김윤희는 자신의 시선에 포착된 마을 풍경에 감정을 이입해서 평면 위에 고정시켜 놓고 있다. 우리가 보는 마을 풍경은 김윤희의 눈이 걸러낸 풍경이다. 거기에는 그가 선택한 기호의 세계가 가득 차 있다. 그 집들을 그는 사실적인 재현이 아니라 감성적인 변용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가 그려낸 집들은 레고 블록 같이 알록달록한 색과 단순한 평면의 연쇄로 이루어져있다. 형광색이나 미색 또는 원색에 가까운 색들을 구사함으로써 흑백으로 처리한 자연 풍경들과 극단적으로 대결하는 구도를 만들어 낸다. 그의 레고 블록 집들은 매끈하게 다듬어진 평면의 꿈을 담고 있으며 화려한 색을 입고 있다. 그러한 색채의 세계는 배경을 이루는 옅은 먹의 자연이미지들과 대비를 이루면서 김윤희 회화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형성하고 있다.

마을 풍경을 시각적 기호 인지하고 그것을 조작하는 일은 김윤희 그림을 차별화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는 눈에 보이는 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옮기는 것보다는 그 풍경에 개입해서 자신의 감성에 따라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 기호 값들을 변형하고 조작함으로써 이질적인 풍경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김윤희는 열린 마음으로 마을 풍경을 담아냈다. 그러나 그 마음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그가 아무리 마음을 담아 색을 입혔다고 하더라도 김윤희와 마을 사이에는 예술가라는 주체와 풍경이라는 객체 사이의 간극이 남는다. 아직 그는 마을 속으로 뛰어들지 안/못했다. 나는 김윤희라는 예술가가 화가와 풍경, 주체와 객체의 간극을 좁힐 것이라는 예측을 가지고 그의 그림을 대면한다. 지금으로서는 그의 마을 그림이 회화적 재현과 기호의 변용 사이에 걸쳐 있지만, 향후에는 그의 그리기가 지금보다 더 치밀하고 적극적인 내러티브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상기해볼 점은 그의 그림이 상투성으로부터 거리 두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보 값을 입력하는 눈과 그것을 화면위에 옮겨놓은 눈 사이에서 발생하는 간극이 바로 김윤희 풍경이 여느 상투적인 재현회화와 결별하는 대목이다. 그가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거운 시선이 아니라 정반대의 뜨거운 시선이다. 그것은 자주 만나는 풍경이건 처음 만나는 낯선 풍경이건 간에 그 속에 담긴 낱낱의 서사들을 하나하나의 소우주로 새롭게 바라보려고 하는 섬세한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그 마음은 이름 없는 집 하나하나마다 일일이 각각 다른 색을 입히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그가 알록달록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풍경을 그려내는 일은 마을 속에 담긴 소우주들 낱낱의 서사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하여 그는 이름 없는 낱낱의 집들을 호명하여 색을 입히고 말을 건네고 뜻을 더한다. 이 얼마나 마음 따뜻한 일인가.

접기

'김윤희' 작가의 다른작품
공유하기

MYA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