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 작가명 : 신철, 캔버스  아크릴릭 91.0 x 116.7cm 2010
  • 작품을 클릭하시면 큰 화면으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작가 평론
존재의 자각, 의식의 충만과 행복

양건열 (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철학박사)

1. 새로움의 연속, 지난한 작품세계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삶에 대한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추구해 온 작가 신철이 이번에 "낯익음에 조우하다"라는 주제로 20회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회에는 해학적이고 소박한 형상미로 주목받고 있는 근작들이 전시된다.
삼십년 넘게 지속되어 온 그의 창작세계는 그야말로 새로움의 연속이다. 그가 제작한 모든 작품은 처음 보는 그림이고 처음 경험하는 세계이다. 작가는 매번 빈 캔서브 앞에만 서면 설렌다. 그의 예술세계가 곧 그러했고 삶이 이와 다르지 않았다. 안정보다는 변화를,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을 갈구하는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은 세속의 눈으로 보면 불우하다. 그러나 불우하면 불우할수록 그의 작품세계는 찬란해진다.
그의 작품은 회화의 언어와 문법에 몰두하였던 "순수조형미에 대한 탐구" 시기를 지나, 시각적 유머와 위트가 돋보인 "회화적 표현의 확장" 시기를 거쳐왔다. 이 기간에 제작된 작품들은 회화의 내재적 가치로서 질감, 색채, 재료, 기호, 상징 등의 조형언어가 감상자들을 자유로운 상상의 유희로 이끈다.
근래 그의 작품세계에서 의미있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시기적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이다. 작가가 예술작품에서 콘텍스트에 주목하게 되면서 이미지 변형, 화면 운용, 공간 구성에 있어서 일상 세계와 더욱 밀접하게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에 이르러 삶과 예술이 일체화 되어 간다. 그간 창작의 세계가 느슨하지 않았는데도 게으름을 탓하며 손에 잘 붙잡하지 않는 새로운 예술 세계를 구현하려 스스로를 다그친다. 그리고 자연과 싸워 나간 만큼만 보여주고 어려우면 머무룬다. 하지만 주저함은 없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은 우리에게 존재의 신비를 흔들어 깨운다. 그의 기억품이 연작들은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거나 애달파 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시간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설렘이다.
지금껏 고민해온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의문이 풀려가고 있는 듯하다.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존재에 대한 자각과 그로 인한 작가의식의 충만과 행복을 담고 있다.

2. 순수형상의 탐구, 압축과 절제의 미학

그의 그림은 쉬워 보인다. 하지만 작가가 고심한 흔적들을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하나의 형상을 창조하기 위해 이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그것을 말해준다. 형상을 압축하는 재능, 이것만으로도 작가의 존재 가치는 대단하다. 더불어 그 흔적들마저 아름답다.
실재 이미지를 회화적으로 언어와 문법으로 변용하는 소묘들이 그의 스튜디오에는 수없이 널려있다. 변형과 왜곡의 과정을 거쳐 창조된 형상들은 매우 압축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러한 창조과정의 흔적들 역시 예술의 일부이다. 그런 단상들의 편린이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확신한다.
최근 그의 작품에는 인물, 나무, 꽃, 새 등의 생명체부터 자동차, 의류, 집 그리고 패션스타일, 상황, 특정한 행위 등 다양한 형상이 등장한다. 이전 시기의 기하학적이고 비실재적인 기호와 상징들이 일상세계에서 쉽게 접하는 구체적인 형상들로 바뀌었다. 이들 형상은 바탕작업, 색채, 질감, 공간배치 등을 거치면서 억측과 인위를 배제하려는 노력과 함께 자연스럽게 태어난다.
일상세계의 낯익은 형상들이 화면으로 옮겨지기 시작하면서 작품세계가 더욱 분명해졌다. 이런 형상들이 한 화면에 서로 관계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시각적 메세지를 제공한다. 이때 화면 역시 시공간의 실재적인 제약과 분별을 부정하고 있어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작가가 거쳐 온 삶의 시간과 공간이 압축되어 있다. 하지만 개별자의 은밀한 세계는 이 땅에서 삶을 공유해온 이들에게 보편타당하면서도 온전한 삶의 의미와 해석을 전해준다.
모든 것이 혼돈스럽고 규정되지 않았던 존재가 마침내 자신의 존재감을 찾기까지 경험했던 그 모든 여정이 압축되어 있고 표현은 절제되어 있다. 이제는 생성과 불멸의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타자를 포용하고,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를 수용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애정과 환희에 찬 시선을 보낸다.

3. 순수형상의 다양한 변용

작가의 손에서 태어난 순수형상은 굳건하고 당당하다. 그 형상들은 생명을 얻어 화면 밖으러 탈출을 감행하려 한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생명을 얻은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형상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문학작품으로, 음악으로, 공연으로, 패션으로, 심지어 영상으로 걸어 들어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은 그 형상들이 순수하기 때문이다. 그가 만들어낸 형상들은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무한히 변용될 수 있다. 배경에 분위기를 띄우는 삽화로서가 아니라, 함께 함으로써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그런 형상들이다. 이것이 바로 회화가 지닌 고유한 독자성으로 타장르와 동등하게 교류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서로 섞이지만 하나가 다른 것을 지배하거나 희생되지 않는 조화가 가능하다.
그의 그림은 삶으로부터 도피를 꿈꾸지 않는다. 예술에서 삶을 밀쳐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형상은 단순해지고 그림의 여백이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림의 여백을 좀처럼 정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삶의 무거움이 화면의 여백을 온전히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부터이다. 그리하여 비어있지도 채워지지도 않는 여백이 만들어진다.
그의 작품에서 여백은 세상과 소통하고 아름다움을 구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순수한 마음이다. 그 마음이 감상자의 마음을 감응시켜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그때 그의 작품은 세상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의 작품은 뽐내거나 자랑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장식을 배제하고 욕심을 비워나감으로써 생활세계의 소박한 아름다움과 만난다. 그의 존재의 인식에서 슬픔과 외로움을 제거하고 아련함을 간직하다. 생성과 소멸의 덧없음을 지우고 희망과 행복을 인식한다. 퇴로가 없는 이 세상의 개별자가 지닌 유한함을 그림을 통해 극복한다.
작가가 그릴 수 없었던 화면의 여백을 채우는 일은 우리의 몫이 아닐까?
작품이 표현하고 있는 자유로운 미와 동행하면서 삶의 여백을 감시 채워보는 것은 우리에겐 진정 축복이다.

접기

'신철' 작가의 다른작품
공유하기

MYA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