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시도하고 있는 '어떤 풍경' 작품들은 주로, 원근법으로 전개되는 풍경이 아득한 시선을 따라 흐른다. 검은 실루엣의 산맥은 풍경 곳곳에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듯하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없이 캄캄할 뿐이다. 사람은 커녕 사람 사는 집 한 채 보이지 않는다. 짐승조차 없다(어쩌면 숨어서 보이지 않는 것일지도). 적막함마저 감도는 검은 풍경은 젊은 날의 암담함과 고뇌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지평선 저 끝에 담았다. 먹의 농담에 의해 형성된 여명과도 같은 빛은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꿈과 청춘의 열정이자 내가 지향하는 바로 그 세계의 시작점일 것이다.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과 흡사하다. 규칙적이지 않고 무자비하고 거칠게 오려진 화선지 조각조각을 차곡차곡 쌓으며 산세를 재구성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나는 나 자신을 재확립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찢겨진 화선지는 나라고 할 수 있다. 갈기갈기 해체된 나를 정형화시키고 안정감을 되찾는 일이야말로 내 작품에서 내가 얻는 가장 큰 수확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그림을 그리며 상상한다. 내가 힘들 때 나의 무거운 짐들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그곳을 상상한다. 너무도 힘들게 걸어 올라간 산의 가장 높은 곳, 그 꼭대기-다른 어느 봉우리보다 높은-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뛰어내리지만, 나의 몸은 구름처럼 하늘 위로 떠올라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하늘 높은 곳에서 내가 걸어 올라왔던 그 산길에서부터 시작해서 내가 정복한 봉우리를 보고 그 너머 내가 정복해야 할 다른 봉우리를 훔쳐보고 그 뒤에 바다 지평선 맨 끝까지 펼쳐진 막연한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저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구나 깨달으며 희열을 느끼며 안도하는 그 순간을 상상해본다. 이런 나의 심리적 풍경을 캔버스에 옮김으로써 다시 한번 그 희열 속에 나를 불어넣는다. 이것이 나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오직 하나이며 내가 그림을 그리는 순간을 사랑하는 이유다.
나는 희망한다. 내 그림을 보는 그 누군가도 나의 그림 속 하늘 위로 떠올라 나의 판타지 세계 잠시 들렀다 갔으면 한다. 지친 생활 속에 그래도 마르지 않는 한줄기 희망을 맛보고 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