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오랜 생각들에 의하면 우리는 모두 무로부터 왔다고 한다. 인간존재의 시작과 근원이 그러하
듯 우리의 삶 또한 대부분은 예측할 수 없으며, 비현실적인 면이 많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어 불안하고 먹먹한 우리의 삶과 영혼이 좀 더 편안해지기 위한 길은 '우주를 관
망하는 커다란 힘'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다. 여기서 '내려놓는다'는 것은, 허무하고 무기력한 상
태로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으며, 부끄러움 없이, 진실되고 진정한 하
루를 보내는 것이다.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아낌없이 만끽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을 토대로 한 본인의 그림은, 한국의 전통춤인 ‘승무’의 몸짓을 그려내고 있다.
승무를 통해 느끼는 원운동과, 윤회론적 사상, 보이지 않는 얼굴표정을 감춤으로서 느껴지는 개인적인
감정의 절제. 장삼자락에서 느껴지는 연약하고도, 유연한 몸짓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느낀다. 떨쳐내려
아무리 애를 써도 떨어지지 않는 소맷자락이 마치 나의 삶을 예전부터 주관하는 업(業)과 같아 슬펐
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그것이 내 것" 임을 인정하는 순간. 인간은 또 다른 차원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 같다. 그것이 동양사상에서 말하는 “도(道)에 이르는 길”이자, 니체가 얘기한 힘에의 의지1 가 아닐까.
인정하기까지 어려웠으나,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이 모든 고뇌과 괴로움은 처음부터 내 것 이었으며,
누구든 평생 이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나의 삶을 구제하고 구원해 줄 이는 오로지 ‘나’ 뿐인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내가 숨 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다른 무엇보다도 고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작업과 삶은 ‘성찰하며 비우는 과정’의 의미를 갖는다. 궁극적으로는 ‘내 안에 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결국에는 나는 모든 세상과 연결괴어 있음을 온몸으로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작품 속 배경처럼 말이다.
다만 내가 알 수 있는 건, 지금 이순간,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 뿐이다.
(2011,7.소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