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 작가명 : 김현식,  Epoxy Resin, Acrylic color 120 x 60cm 2010
  • 작품을 클릭하시면 큰 화면으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작가노트
오랫동안 전통회화가 아닌 새로운 이미지 작업을 모색해왔고
그것의 가능성을 평면이면서도 공간(입체)을 드러낼 수 있는 재료(Epoxy resin)를 찾으면서 시작되었다.

현대미술의 많은 시도들이 서구 환영미술의 깊이감과 켄바스의 평면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해체의 과정이지만
나는 회화의 평면성을 유지하면서도 전통의 일류젼이 아닌 실질적 공간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화면은 지극히 전통회화의 이미지로 보여지지만 들여다보면 전통회화의 성격으로는
해석할 수없는 평면/입체의 모호한 경계의 만남을 볼 수있다.
일반 켄바스가 아닌 투명한 켄바스에 그려진 이미지가 여럿이 있고 그것들은 시간적 차이를 두고
겹겹이 쌓여져 하나의 완전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요즘 하고있는 뒷 모습(주로 여성의 뒷 모습) 작업들은 그동안의 보이지 않는 그 무엇- 사이공간- 에 대한 고민을 압축적으로 표현 한 것이다.
사이문화는 언제나 존재해 왔지만 그것 자체는 중심의의 가장자리-경계에서 맴돌기에 화자에서 벗어나기가 쉽다.
하지만,경계의 끝은 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와의 만남의 시작 점으로, 경계와 경계를 연결하는 통로로서의 사이, 사이문화가 엄연히 존재해왔고
그것들은 유연하게 화합하여 새로운 세계를 여는 창조의 동력되어왔다.

모진시련을 이겨내고 자란 커다란 나무기둥을 따라 풍성한 잎들속으로 들어가면, 그곳에는 나무가 살아온 많은 기억들이 있다.
우리의 기억은 시공에 관계없이 무수한 이미지로 떠 다니는 것 처럼...
한그루의 나무이미지를 사람의 뒷 모습으로 대치시켜 생각하면서 지금의 이미지를 만들게 되었다.
인물이(역사가) 완성되기까지는, 수많은 일들이 각각의 기억(기록)으로 존재할 것이다.
여인의 풍성한 뒷 머리가 완성되기까지는 수많은 시간/공간의 만남-사이가 겹쳐져서 만들어진다.

작업에서 보이는 것의 너머에 분명히 존재하는 힘의 원천을 찾고자함이 지금까지의 오랜 실험이었고, 그 가능성을 층위가 다른 무수한 선들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에서 발견한다.
뒷 모습 화면에는 두 개의 다른 빛이 나타나는데, 우리의 시선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그려진 빛을 지나 깊숙한 선들 '사이' 의 빛으로 다가간다.

2008 김 현 식

접기

작가 평론
사과나 사람 같은 어떤 대상을 본다고 할 때 우리가 진정으로 보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사과나 사람의 모습 전부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사과의 뒷부분이나 사람의 이면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의 모습만으로도 일반적인 사과 혹은 내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라 규정하고 인식하는 것에는 별 문제가 없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무엇 때문에 사과나 사람의 뒷부분처럼 대상의 보이지 않는 측면을 사물의 당연한 일부로 여기는 것일까? 물론 시각을 벗어나서는 이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시야, 즉 “시선이라는 시각을 통해” 어떤 한 사람의 일부 모습 만으로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인식하는데 무리가 없다. 그렇다면 일상의 지각경험에 나타나는 이 같은 모순을 어떻게 조율할 수 있는 것일까? 이는 인식론의 통상적인 철학과정들 속에서 제기되는 감각정보나 지식 등과 일맥상통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본다는 것’이 정확히 하나의 시각적 감지라면, 이런 작용에 기반하는 사물이나 사람들간의 다양한 상호작용과 신상확인 등에는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 이상의 많은 것들이 관련될 것이다. 개별 대상의 많은 부분들이 한눈에 모두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볼 수 있는 또 다른 감각이 있기에 문제될 것이 없다. 즉 다른 감각을 통해 보이지 않는 부부까지도 접근해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초상화는 그리는 대상의 얼굴을 다루는데, 얼굴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중요한 계약서에 서명을 하기 전에 그들의 사업 상대자를 눈으로 직접 보고 대면하기를 원한다. 김현식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여성의 뒤통수와 풍성한 머리카락을 제시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이미지들이 나름대로 여성을 충분히 표현해주고 있어서 그들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얼굴을 보아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점이다. 그래서 마치 뒷모습만으로도 그 성격과 개성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점에서 김현식의 작품은, 보이지 않는 것은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에 온전한 개성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여전히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임을 함의한다. 그 결과 그의 작품은 단순한 평면 이미지라기보다는 대상의 완전한 상태를 드러내기 위해 한층 한층 쌓아 올린 이미지라 할 수 있다.

(1)
김현식의 신작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기실 세계 현대미술계에서도 두드러진 반향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주요 전시에서 소개된 그의 작품은 풍성하게 늘어진 건강한 검은 머리가 단정히 뒤로 빗겨져 있는 여성들의 뒷모습 이미지로, 여성의 머리는 하얀 목덜미를 지나 살포시 드러난 어깨 한편으로 넘겨져 있다. 처음 작품과 마주할 때 그것이 환기시켜주는 맑고 심미적인 촉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의 뒤통수 모습이 이렇듯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리라 일찍이 기대해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벽에 걸려있는 작품 한 점만으로도 캔버스의 프레임을 넘어 전체 공간이 여성성으로 넘쳐날 수 있다는 점이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이는 상당히 인상적인 경험이었는데, 심지어 뒤통수와 목덜미 너머로 얼굴이 감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한 여성의 여성성이 그토록 풍부하게 드러남에 압도되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인의 여성성은 격하고 강렬해서 일순간 불꽃을 튀며 폭발상태에 이를 듯 하다. 바로 이것이 김현식의 ‘시각예술’ 작품 안에서 휘날리고 있는 긴 머리의 뒷모습과 목덜미 이미지의 힘이다. (註: 여기서 나는 ‘회화작품’이 아닌 ‘시각예술작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심사숙고 했다. 이는 곧 그의 작품이 근본적으로 회화 개념에 대한 논의를 유발한다는 점을 함축한다. 작품의 외관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의 작품은 회화가 아니며, 이 점은 그가 평범한 현대미술가가 아니라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선구적인 작가라는 점을 이해하는데 대단히 중요하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타인과 직접 대면하거나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는 데에 익숙해 있어서 지인들의 뒷모습에는 별 생각이 없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사람들의 뒤통수가 아닌 얼굴 인상을 바탕으로 그 사람을 기억한다. 이것이 바로 얼굴을 마주해서 상대의 눈을 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한데, 보통 사람의 눈은 영혼의 창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의 뒷모습과 하얀 속살의 에로틱한 목덜미만으로 다양한 이미지와 풍부한 의미를 발하는 김현식의 신작이 놀라울 수밖에 없다.

그의 작품은 통상적인 분류를 벗어난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초상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유독 사람의 뒷모습만을 담은 초상화는 그리 많지 않다. 사실 여성의 얼굴을 표현하면서 왜 뒤통수에 주목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얼굴을 마주한 만남’이라는 말은 곧잘 쓰지만, ‘뒷모습을 마주한 만남’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도심 거리에서 우리 앞을 지나가는 여인의 매력적인 뒷모습을 발견할 때(우선 그녀의 각선미와 다음으로 반짝이는 긴 머리가 시선을 끈다), 우리는 보통 그녀를 앞질러가 뒤돌아보며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곤 한다. 결국 낯선 사람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 기준은 그 사람의 앞모습으로, 사람의 앞모습과 얼굴을 살펴본 후 그 사람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술가 김현식이 여성의 머리나 목의 다양한 뒷모습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종에 작가의 괴팍함을 드러내는 징조는 아닐까? 이런 이미지 작업을 통해 그가 추구하는 독특한 미학적 이상이나 예술적 목표는 무엇일까?

김현식의 작품이 초상화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보면 그의 작품을 ‘회화’로 부르는 것이 지나치게 성급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면밀히 관찰할수록 그려진 작품이 아님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려진 것이 아니어도 이를 회화라 부르는 것이 적합한가? 김현식 작가는 다년간의 시행착오적 실험을 거쳐 비록 미학적, 예술적 효과 및 결과는 전통회화와 같을지라도 회화의 성격을 지니지 않는 전연 새로운 시각예술작업을 고안해낼 수 있었다. 이에 관해서는 좀더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우선 김현식 작가가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당시 그는 서양화의 역사, 가령 캔버스 상의 재현회화나 프랭크 스텔라의 비정형회화(shaped canvases) 이후 미니멀리즘으로 전이된 추상회화, 또는 예술적인 진정성에 대해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개념적인 실험행위 등이 어느 정도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틀림없이 인식했을 것이다. (註: 당시 서구미술의 상황은 너무나 절망적이어서 스탠리 카벨(Stanley Cavell)은 이에 대해 “기만의 가능성이 만연해있다는 사실만이 현대미술 상황을 규정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현식 역시 젊은 시절에는 다소 개념적으로 보이는 스타일의 회화작업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항상 ‘재현적인 구상회화’를 갈망했기에, 이미지 제작은 케케묵은 것이어서 예술적 창조의 레퍼토리로부터 영영 벗어난다는 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가의 경력을 쌓아가게 된 예술가로서 그는 재현적인 서구 이젤회화의 운명을 거스르는 새로운 이미지 제작방식을 위해 오랫동안 고심했다. 그리고 마침내 구상적인 이미지 재현을 위해 붓을 사용해서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려나가는 전통적인 서구회화를 거부하는 새로운 이미지 작업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가 발견한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견고한 에폭시 수지 층을 겹겹이 쌓아 올리는 작업으로, 이는 마치 암석의 형성 과정을 반복한 다음 그 표면에다 부조나 조각 같은 3차원적인 이미지를 재현하기 위해 날카로운 물체를 사용하는 것처럼 딱딱하게 침전된 에폭시 수지 표면을 긁어내는 것과 같다.

그의 새로운 방식에 대한 진가를 한층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서구 이젤회화가 수세기에 걸쳐 추구해온 점, 즉 평면 상에서 깊이감이 느껴지는 환영공간의 창출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모더니즘 회화의 역사는 그런 환영적인 깊이감과 캔버스의 평면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해체의 역사라 말할 수 있다. 반면에 김현식은 실재하지 않는 환영적인 깊이감보다는 실질적인 깊이의 공간을 형성하고자 했다. 그 결과 그는 물 속에서의 탁월한 투명성과 용해성을 지닌 에폭시 수지에 착안하여 새로운 제작방식을 시도했는데, 이것이 곧 캔버스에 실질적인 공간의 깊이를 구축하게 된 방법이다. 그는 일단 캔버스 표면에 밑그림을 그린 다음 그 표면 위에 에폭시 수지를 붓고 그것이 견고하게 침전되어 맨 처음의 층을 이루도록 둔다. 이때 굳어진 침전물이 밑그림의 점성 경계를 형성하게 된다. 여기에 날카롭고 뾰족한 금속 기구를 이용해서 들쭉날쭉하고 미세한 선들을 긁어가며 이미지를 생성해낸다. 이런 방식으로 두 번째 층위에 만들어지는 새로운 드로잉은 첫 층위에 그려진 드로잉으로부터 좀더 상위 단계로 갈라져 나온 줄기, 즉 프랙털 기하학의 용어를 빌자면 ‘분기(bifurcation)’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들쭉날쭉한 선들 위에다 색채를 덮고 다시 그 위에다 에폭시 수지를 부으면 이로써 두 번째 단계의 침전물이 형성된다. 그리고 나서 또 다시 프랙털 분기에서와 같은 과정들을 무한히 반복한다. 이처럼 몇 번째인지도 모를 수많은 층위들을 구축하느라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노동집약적인 과정이 없었다면, 단일 평면상에 탐스러운 검은 머리가 한쪽 어깨를 덮고 있는 여인의 뒷모습을 표현하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아울러 시각적이면서도 촉각적인 효과 또한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김현식은 풍성한 머리카락을 지닌 여인을 표현하기 위해 한 타래의 머리카락을 한층 그리고 그 다음 층에다 반복해서 그려나갔다. 여성의 머리를 이런 방법으로 표현한 것은 동서양의 회화사를 통틀어 알려진 바가 없다.

이번 전시에서의 그의 작품을 좀더 꼼꼼히 살피다 보면, 풍성하고 건강한 검은 색 머리카락 묶음 한가운데에서 풍기는 빛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신비로운 내면의 빛의 원천은 무엇인가? 이것은 어떤 색채회화가 야기하는 결과가 아니다. 그 빛은 전통회화에서의 붓 터치가 드러내는 색의 파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다. 카라밧지오의 <에라스무스에서의 만찬(Supper at Erasmus)>에 나타나는 예수님 형상을 둘러싼 광선효과는 그가 처음 유럽회화에 도입했던 명암법에 의한 것이었다. 카라밧지오와 이후의 램브란트가 이 방식을 크게 발전시키긴 했으나, 궁극적으로 이런 투광효과는 환영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예술적인 투광은 초월적인 효과를 유발한다. 그런데 환영주의적 초월 효과와는 대조적으로, 김현식의 이미지에서 엿볼 수 있는 내면의 빛은 여인의 뒷모습에서 비롯되는 내재성의 결과이다. 다시 말해서 김현식 작품에서의 내적인 빛은 이미지 이면의 어딘가 깊숙한 곳으로부터 발산되는 것으로, 이는 자연적인 원천을 지닌다. 이것이 곧 ‘내재성’의 의미이다. 서양화를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김현식은 동양의 문화와 예술에 그 뿌리를 둔다. 프랑수와 줄리앙(Francois Jullien)이 그의 뛰어난 저서 IN PRAISE OF BLANDNESS와 THE IMPOSSIBLE NUDE: CHINESE ART AND WESTERN AESTHETICS에서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중국의 미술가들은 서구 미술가들과는 달리 초월성을 열망하지 않는다. 중국의 전통미술이 지향하는 것은 내재성이다. 그렇다면 김현식은 내재성의 결과에 해당하는 이런 내면의 빛을 어떻게 발산하고 있는가? 이에 관해서는 다음의 설명이 필요하다.
서양미술에서 재현에 따른 이미지 제작방식은 늘 그리드 구조에 입각해왔다. 캔버스 상의 그리드 비율에 비례해서 그리드 구조가 정밀하면 정밀할수록 이미지의 재현은 더 사실적이게 된다. 구조화하는 장치로서의 그리드 기하학은 흡사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에워싼 그물망과도 같다. 이런 구조에는 감추어진 틈이나 그 어떤 여지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김현식의 작품에 등장하는 구조화 원리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공동저작 CAPITALISM AND SCHIZOPHRENIA의 개념인 리좀적 기하학이나 프랙털 기하학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프랙털 기하학이 제시하는 자기-유사적 패턴 활동의 무한한 분기 속에는 항상 예상치 못한 균열이나 틈이 존재한다. 이번 전시에서 조각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김현식의 작품을 프랙털 기하학적 구조화로 간주할 경우, 여기에는 여인의 머리 단 이면에 감추어진 수천 개의 균열과 틈이 나타나게 된다. 전체적으로 이 미세한 틈들은 형상-배경의 변증법에 따라 배경의 기하학을 형성한다. 아울러 형상과의 관계에 따른 배경의 기하학에는 잠재적인 형상성의 힘이 내재하게 된다. 이런 잠재적인 힘의 장에서 빛은 자연적이건 인공적이건 간에 형상화된 배경의 명확한 색채 스펙트럼을 통해 전연 새로운 파동이나 미세한 빛의 반향을 유발하기에 이른다. 내면의 빛이란 결국 색채효과가 아니라 바로 그 같은 빛의 파동 및 반향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현식의 내적인 빛은 자연적인 원천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내재성을 지닌다.
위 단락과 같은 견지에서 볼 때 김현식의 작품은 후기구조주의적 문화 이데올로기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비록 열악한 문화비평이 들뢰즈와 가타리를 일률적으로 다루어 오긴 했지만, 일찍이 들뢰즈와 가타리가 지적한 바대로 프랙털적 사유는 후기구조주의와 무관하다. (註: 물론 이에 대해서는 좀더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기술적인 담론을 다루기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겠다.) 그러나 김현식의 작품을 해석하기 위해 굳이 들뢰즈와 가타리의 이론 틀에 기댈 필요는 없음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왜냐하면 들뢰즈와 가타리가 서구 현대화에 대한 비판적 해석에서 지향하고 있는 바를 ‘철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해보면 바로 전통적인 동양철학에서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중국학 연구자인 프랑수와 줄리앙은 최근 연구에서 우주와 그 생성 과정들을 이해하기 위한 철학적인 접근방법을 발견했는데, 이는 특별히 서구 현대화를 가능케 했던 서구철학과는 현격히 다른 것이었다. 카오스 이론과 프랙털 기하학에 따르면, 제아무리 미세하다 해도 시초는 반복적인 자기-유사 과정을 통해 차이를 생성하게 된다. 이런 과정은 프랙털 기하학의 예로 잘 알려진 만델브로트 집합((Mandelbrot Set)에서처럼 새로운 단계로의 반복적인 분기를 통해 무한대의 형성과정을 거치는데, 여기서 들뢰즈의 고유한 신조어에 기반하는 “프랙털적 존재” 개념이 파생된다.

(2)
표면적으로 김현식의 작품은 팝 아트나 초현실주의를 변형시킨 포토리얼리즘적 회화와 유사하다. 이는 과거 10여 년이나 20여 년 전쯤에 회화 장르에서의 중국화가들을 당시 가장 부유하고 인기있는 미술가들로 만들어주면서 한때 동아시아에서 유행했던 경향이다. 이번 전시에서 여인의 다양한 뒤통수 이미지들과 마주하다 보면 자칫 김현식의 예술적 감수성과 지향점들이 이런 경향과 유사하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이보다 더 나을 순 없다. 김현식 작가는 본 글의 1장에서 이미 명시했던 대로 무언가 아주 색다른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시각예술을 미지의 영역으로 옮겨옴으로써 현대회화의 역사 속에 머물기를 거부한다. 뿐만 아니라 그가 추구하는 미학적 효과나 예술적 목표 또한 동시대의 예술제작 패러다임과는 철저히 다르다. 작가 김현식은 한국의 미술가들 중에서도 단연 독특하다. 그의 작품은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 역사와 미술현상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유용하다. 가령 신정아 스캔들이나 한국미술에서의 삼성가(家)와 같은 권력가문의 부정부패, 그 외의 부정행각들이 끊임없이 뉴스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 역사를 다룬 대학교재에서 소개되고 있는 한국역사에 관한 본문에 주목할만한 구절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크랙, 패어 뱅크, 라이샤워 등의 하버드 역사가들은 다음의 흥미로운 의문들을 제기하고 있다. 가령 중국 유학 텍스트의 고전적인 주해들과 대척되는 신(新)유학을 유입하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은 왜 그토록 극단적인 독단에 빠져든 것일까? 마찬가지로, 인접 국가 일본과는 달리 한국인들이 그리스도교를 열렬히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인들만의 고유한 정신이나 문화적 토양에서는 상당히 낯선 서구사상이 한국 현대미술에서는 열광적으로 흡수되고 있다. 가령 백남준이 선구적으로 받아들였던 서구 ‘아방가르드’ 사상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현재 한국에는 그의 추종자나 아류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한국의 미술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상업적인 미술경매시장에서 거래되는 것보다 베니스비엔날레나 카셀도큐멘타 같은 서구의 아방가르드 현장에서 소개되는 것에 더 큰 자부심을 느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국작가들은 서구 아방가르드 개념미술이나 그 밖의 허무주의적 관점을 좇는 작업, 혹은 ‘실재’ 같은 세계적인 추세의 주제를 다루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보다는 서구에서 요구되는 순수 ‘개념’을 적용하는 데에 각별히 더 몰두한다. 반면에 중국 미술가들은 훨씬 더 실용적으로 서구 현대미술 양식을 응용한다. 이에 대해 프랑수와 줄리앙 교수는, 중국인들이 순수 서구사상을 자신들과는 무관한 것으로 간주하고 거부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초월성’이 아닌 ‘내재성’을 추구하게 되었고, 바로 이 점이 중국철학과 서구철학간의 차이임을 역설한 바 있다. 즉 중국의 현대미술가들 역시 서구 아방가르드를 차용하고 있지만, 이런 시각은 전통사회의 현대화에 수반된 경제발전이 동아시아 사회에 파생시킨 팝 문화에 대한 탐구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년의 짧은 흐름 속에서 숨가쁘게 진행된 세계화 과정은 동아시아국가 사회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모시켰다. 미국 소비중심의 팝 문화는 식습관이나 의복양식, 팝 문화적 소비양식 등과 관련해서 한때 횡행했던 전통 유학사회에 근간한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의 전통문화가 미국화되는 것에 별 저항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치 동아시아가 팝 문화의 정박지가 된 듯 보이기도 한다. 급격한 문화변화는 동아시아 미술세계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기존에는 서구이론을 거부하거나 혹은 그런 성향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점차 변모해가는 팝 문화 소비사회를 탐구하고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중국 미술가들은 아방가르드 양식이나 앤디 워홀의 팝 아트적인 회화를 적절하게 차용해왔다. 중국의 팝 미술가들은 정치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중국을 재건하기 위해서 모택동 혁명전략의 과도한 유산을 해체하는 강력한 방법으로 팝 아트적인 구상회화를 채택했다. 이는 일찍이 워홀도 시도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중국적인 팝 미술가들은 국제미술계에서 거대한 스타로 부상했으며, 그들의 작품은 전세계의 경매시장에서 억만 달러로 거래되고 있다. 중국이 세계로부터 철저히 고립되어 있는 동안 한국의 미술가들은 서구미술계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에 스스로가 중국 본토의 동시대 화가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해왔다. 따라서 중국 현대미술의 급부상은 눈이 번쩍 뜨일만한 사건이자 일종의 충격이었다. 한국 현대화가들은 중국이 국제사회로 재진입한지 불과 10여 년 내지 20여 년 만에 국제적인 주역으로 도약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현대화가들에게 유익하게 작용했다. 그 이전까지 한국화가들은 주로 서구양식의 추상회화와 아방가르드 개념미술 및 설치미술 등에 매력을 느끼는 반면 구상회화는 다소 폄하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태도는 심지어 동양화가들에게서조차 만연했다. 그런데 중국화가들이 국제적인 미술현장에서 일군 큰 성공을 계기로, 한국의 추상화가나 개념미술가들 역시 한국사회에서도 팝 소비문화가 정착될 수 있는지에 대해 면밀히 실험하는 가운데 신(新)구상회화라는 새로운 시각언어로 전향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에서 주목 받을만한 두 가지의 새로운 구상양식이 등장했는데, 중국의 팝 아트와 마찬가지로 초현실적인 요소들을 가미해서 한국적인 것으로 탈바꿈한 워홀 식의 팝 아트, 그리고 ‘하이퍼리얼리즘’ 혹은 ‘슈퍼리얼리즘’ 등으로 불리는 포토리얼리즘이 이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서구 모더니즘의 독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는데, 한국화가들에게는 그런 서구의 정론을 고수해야 할 역사적 근거가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서구 모더니즘 미학과 아방가르드 개념들은 결국 특정한 서구역사의 경험적 산물인 것이다. 따라서 자연스레 상당히 많은 순수 구상화가들이 팝-초현실적인 미술양식과 포토리얼리즘 회화 양 진영에서 동시에 등장하게 되었다. 이환권, 조정화, 유진영 등과 같은 조각가들은 대체로 팝과 초현실주의의 하이브리드 양식으로 묶을 수 있고, 반면에 안성하, 송영규, 송은영 등의 작업은 모순된 초현실주의적 왜곡을 드러내는 초현실주의 양식으로 묶을 수 있다.

김현식을 이와 같은 작가군에 포함시키고 그의 작품을 포토리얼리즘 회화의 일종으로 분류하는 것이 적합하며, 아울러 그가 국제적인 미술경매시장에서도 매우 성공하리라 본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국제사회에서 더 주목 받을만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워홀과 비견될 정도의 미술사적인 의의도 지닌다. 전연 새로운 ‘예술행위’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나의 해석이 옳다면 언젠가 그는 과거 100년사에 남을 선구적인 예술가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접기

'김현식' 작가의 다른작품
공유하기

MYA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