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기하학 섬으로의 여행

전시기간: : 2010.03.24 ~ 2010.04.06
참여작가: :; 이정헌 , 박안식 , 임수진 , 이일, 임성훈

이정헌 , 박안식 , 임수진
전시구분: : 국내 , 단체전
전시장소: : 갤러리 이앙
: 서울 종로구 혜화동 90-18번지
관람료: : 무료
관람시간: : 오전 11시 ~ 오후 8시
휴관일: : 구정, 추석연휴
문의전화: : 02-3672-0201
홈페이지: : www.galleryiang.com

전시개요: 기하학 섬으로의 여행 _ Voyage to the Polygon Island

Prologue

「“저는 표면이 없는 평면을 발견했습니다.” 조소와 너털웃음 속에서 헌터가 커다란 흰 종이를 탁자 위로 들어 올렸어. 이 친구, 휴대용 칼로 중앙에서 약간 비껴난 종이 표면에 3인치 정도 길이로 쓱 금을 그었어. 그리고 종이를 여러 차례 빠르고 복잡하게 접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들어 올리더래. 그러자 종이의 한끝이 틈새로 빨려 들어가는 듯싶더니 그대로 사라지더라는 게 아닌가. 헌터가 대중들에게 빈손을 보이며 말했다네. “보셨죠? 표면이 없는 평면입니다.” 장내는 일순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네. 그리고 그 고요는 갈수록 더 굳어 갔어.」

이쯤 읽었을 때,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녀오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내일 아침. 지중해 어디쯤의 섬이라고 했는데 그 명칭이 하도 길고 발음도 어려워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휴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출장도 아니었다. ‘그냥’ 대뜸 다녀오겠다는 것이다. 이건 좀 그녀답지 못하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다짜고짜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일까?
말하자면 그녀는 우리 회사의 ‘에이스’로 지난 몇 년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성실히 일해왔다. 몇 번의 어려운 계약도 성사시켰고 굵직한 프로젝트도 군말 없이 해내곤 했다. 휴가도 반납하고 일에 매달린 적도 종종 있어 되려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당연히 그녀의 센스는 누가 뭐래도 칭찬할 만 했다. 게다가 인간성은 또 어떠한가. 분위기를 압도하는 밝은 미소과 쾌활함, 사람들을 유쾌하게 해주는 위트까지, 정말이지 그녀는 미운 구석이라곤 한 군데도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무언가 보상을 해주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꼈고 생각해보니 그리 무리도 아닐지 싶었다. 여기서 이유를 더 추궁한다면 그 동안 그녀가 쌓아왔던 나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래, 영영 떠나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 까짓 껏, 보내주자!
‘그 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잠시 휴가를 다녀와도 괜찮을까요’라던가 ‘몸이 안 좋아서 며칠간 쉬었으면 합니다’라던가 하는, 변명 같을지언정 조금은 구체적인 이유였다면 좋았겠지만, ‘더 이상 힘들어서 일 못해 먹겠습니다’라는 사유가 아닌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며 나는, 애써 못 이기는 척 보내주기로 했다. 말 그대로 ‘쿨’한 상사임을 자처하면서.
하지만 그녀가 없는 사이 나는 알 수 없는 불안함을 느꼈고 그 섬의 이름을 재차 물어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그 후회는 곧 현실로 다가왔다.

언제부턴가 나의 몸과 마음은 본능적으로 자유를 필요로 했다. 그때부터 나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수도 없이 꿈꿔 왔다. 그 어떤 간섭도 없이, 방해도 없이, 혼자서 초연하게 지내보고 싶었다. 힘들었던 ‘관계들’을 잠시 접어 두고 맘 편히 쉬고 싶었다. 그리하여 한동안 잃어버렸던 원기를 회복하고 싶었다. 그렇게 떠나온 곳이 바로 이 ‘섬’이다.
지도를 펼쳐보았다. 위에서 내려다 본 시점으로 인해 평면으로 느껴지는 섬, 그 표면의 튀어나온 가장자리를 꼭지점으로 하여 위에서 아래로, 아래서 옆으로, 하나씩 연결하면 반듯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육각형이 될 듯 했다. 나름대로 계획을 짜보자면 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성당을 중심에 두고 6개의 구역을 나누어 삼각형 모양대로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은 이 삼각형, 내일은 이 삼각형… 6개로 나눠지는 이 섬을 하루에 한 조각씩 여행한다는 낭만적인 상상으로!

이정헌의 작품

해질 무렵, 창문 틈에 기대어 성당을 바라보던 나는 성당 입구에서 신부님과 한 소녀가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고 묘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성당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받아 소녀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도 환히 빛났고 하늘거리는 원피스 때문에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했다. 소녀는 나비 날개를 달고 있었는데 날 때부터 그러했던 것 처럼 퍽 잘 어울렸다. 그런 소녀의 모습은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순수의 표상 같았다. 이와는 달리 모든 욕망을 옥죄고 있는 듯한 신부님의 복장은 유난히 불편해 보였다. 순수의 시대에서 벗어나 욕망의 세계로 들어갈 소녀, 욕망의 시대를 지나 금욕의 세계로 들어온 신부. 환영처럼 흔들리고 있는 이 두 존재의 형상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그림이었다. 바람을 쐬러 잠시 나왔다가 소녀와 신부님이 존재했던 그 거리에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이일의 작품

밤이 되자 축제가 시작되었다. 이 섬에 대해 무지한 나로써는 무슨 축제인지 알 수 없었으나 지구 반대편에서 느끼는 색다른 풍경은 흥미롭기 그지 없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동물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섬에서 펼쳐지는 가면무도회, 말하자면 그런 셈이다. 사람들은 무리 지어 다니며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 좁은 골목길에 이르러서 축제는 한껏 무르익었다. 사람들은 모두들 흥에 취해 있었다. 물론 흥이 아니라 술에 취한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나를 제외하고서도 이 곳 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여럿 되 보였다. 우리는 그저 즐기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즐길 수 없었다. 맨 얼굴을 드러내놓고 무리를 구경하는 내 모습은 영락없는 이방인이었다. 동물의 얼굴이 있어야만 나도 그 무리에 낄 수 있을 것 같았고, 보란듯이 잘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마디로 가면은 또 다른 보호막이었던 것이다.
생각해보자니 살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가면을 써왔던가.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기 싫어서 열심히 일했고, 충돌하기 싫어서 내 일이 아닌 것도 떠맡아 했다.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이미지를 위해 항상 웃는 얼굴이었고, 언제나 밝은 모습이었다. 특히나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늘상 그럴듯하게 위장하고 포장했다. 그렇게 나는 가면이 저마다의 생존전략이라는 것을 알아채 버렸다. 서로 가면을 쓴 채로 마음까지 다가가지 못하는 관계들을 생각해보면, 각자의 정체성은 다들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조금 울쩍해진다.
오랜 시간 가면을 쓴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어지러웠다. 어쩌면 이 가면을 쓴 모습이 인간 본연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일 테다. 나는 그들의 눈을 바라보았다. 다시는 보지 못할, 꿈결처럼 지나가 버리는 그들의 눈을. 어쩌다가 이렇게 많은 눈들이 섬이라는 이 작은 공간에 갇히게 된 걸까.

임성훈의 작품

이 섬마을에 구시가(舊市街)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존재한다면 이곳은 신시가(新市街)임에 틀림없다. 이 섬의 분위기와는 걸맞지 않게 시대를 앞서간 느낌이다. 한마디로 이곳은 섬이 아니라 튜닝 된 도시 그 자체였다. 거대한 콘크리트 도시! 고층 건물들은 잘 짜여진 구획에 맞춰 나란히 즐비해 있었고 하늘로 치솟은 빌딩들은 아무리 고개를 뒤로 젖혀도 끝이 보일까 말까 했다. 그 흔했던 풀 한 포기 조차 볼 수 없는 척박함이란… 어제 까지와는 사뭇 다른 마을 분위기, 그 경계가 너무나 뚜렷하여 전혀 다른 곳을 여행하고 있는 기분이다. 몇 십 년 후에나 다가올 미래의 도시에 던져진 느낌으로.
온 마을이 회색이었다. 그 회색 빛 숲 속에서 길을 잃은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호수를 들여다 보았다. 구름이 비친 호수의 물결은 대기의 미동에 이끌려 조용히 출렁이고 있었다.
이 호수는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일까, 아니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이곳의 삭막함으로 인해 물이 말라 버리지나 않을까, 괜한 걱정이 들기도 했다. 자연을 밀어내고 만들어낸 인위적인 공간, 과연 이곳은 누구를 위한 공간일까? 그제서야 나는 자연, 그리고 자연스러운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새삼 깨달았다. 아, 생명이 있는 것과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축복이었던 거구나.
하지만 슬프게도 이 삼각형 안에서는 그런 축복이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더 슬픈 것은 그 누구도 이러한 축복을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 사람들은 시간에 쫓기듯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각자의 일을 해나갈 뿐이었다. 같은 섬 안에서 삶의 방식이 너무나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과연 그들은 인생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틈 속을 헤집고 나와 나 역시 빠른 걸음으로 돌아왔다. 해는 저물었고 또 다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문득, 외로웠다.

임수진의 작품

오늘은 아침부터 바닷가로 달려가 투명한 공기를 들이 마셨다. 모래밭에 누워 세모난 하늘을 바라보자 눈부시게 새하얀 구름이 펼쳐졌다. 그 동안 갇혀있던 나의 감정들도 부풀어 올랐다. 조금씩, 조금씩 증식해 가는 응어리진 감정들. 이 모든 것들이 ‘소통’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나의 덩어리가 이러할진대 너의 덩어리는 또 어떠할까. 지난날, 순수하지 못하여 잃어버린 관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아무리 아파해도 다가갈 수 없는 관계가 있지 않은가. 닫혀 있는 마음의 문을 열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그간 소통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자연 앞에서 숨쉬면서 다짐해 본다. 내 몸 안에서만 꾸물거리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덩어리들을 말끔히 흘려 보내겠다고. 마음까지 깨끗하게 비워낸 후에 그 누구와라도 진실하고 순수하게 마주하고 싶다. 모든 관계에는 아름다움과 행복에 대한 무한함이 존재한다. 서로의 무한함을 공유할 때, 그 때 비로소 투명하고 거짓없이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나는 성당으로 들어가 보았다. 성당을 메우고 있던 숭고한 분위기에 숨 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절로 경건해졌다. 성당 안에는 한 여인과 나, 오직 둘 뿐이었다. 기도를 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완전히 젖어 있었다. 어떤 기도일까, 어떤 아픔에 대한 기도일까. 기도를 마친 그녀가 조용히 일어날 때쯤 눈이 마주쳤다. 눈물로 뒤덮인 아름다운 얼굴, 처연함과 비애가 담겨있는 그 얼굴은 인간의 슬픔에 대한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그 모든 슬픈 감정들을 평정하는 저 온화한 미소는 이미 모든 것을 초월하고 있었다.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서로의 마음이 끄덕여 졌다. 그녀가 구름처럼 소리 없이 지나갔을 때 나는, 견딜 수 없는 벅찬 감정에 휩싸였다. 아픔이 내 것이 되었을 때, 완전한 나의 것이 되었을 때 나 역시 진정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밑바닥에 숨겨 두었던 슬픔이 울컥 차 올랐고, 뜨거운 것이 흘러내려와 턱 끝에 매달렸다. 그날 밤, 나의 눈물에는 수많은 관계들이 맺혀 있었다.

조영철의 작품

적막함이 나를 깨워 놓는 밤이다. 맑은 정신으로 누워있다가 잠이 들지 못한 나는 오늘 걸었던 그 길을 다시 한 번 거닐었다. 같은 공간이었지만 낮에는 느낄 수 없었던 전혀 다른 느낌이 감싸고 들었다. 삼각형의 갈래 길에서 순수한 동물들의 무리를 만났다. 그들은 마치 마을의 이정표처럼 나를 안내하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은 길 위의 숙명과도 같은 발로써 모래밭을 긁어댈 뿐 그 어떤 경계의 태세도 없었다. 나는 결국 어디로도 향하지 않고 그들의 중심에 서 있었다. 처음부터 방향이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다면체로서 흘러가고 있고 또 변하고 있는데 굳이 방향을 찾을 필요가 있었을까.
밤이 찾아온 섬에는 별이 맑았다. 그 빛이 밝아 나의 그림자는 더욱 또렷했고 동물들의 그림자 역시 또렷해 보였다. 바닥에서부터 그 검은 형상들이 반짝여 눈이 부셨다. 그들은 너무나 아름다운 다면체였다. 어쩌면 이것이 이 섬의 비밀일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것들을 무한히도 반짝이게 하는 힘!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검은 그림자 앞에서 따뜻한 눈물이 ?아났다. 그것은 아마도 그 동안 입으로만 살아있었던 나의 부끄러움 때문이었으리라.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그림자 위에 나의 눈물방울이 조각처럼 새겨졌다. 오늘밤, 나와 그들은 이렇게 하나가 되었다.

박안식의 작품

섬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내 안에서 늘 살아있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지난 6일간 떠돌았던 나의 발자국들을 그려 보았다. 매일 밤, 이 섬을 조각 조각 맞춰 보았던 기억들이 오롯히 새겨진다. 나와 섬의 관계는 이러했다.

「우주가 한 권의 책처럼 펼쳐졌다. 나는 그 책을 들여다보았다. 오른쪽 페이지 맨 윗부분 모서리가 표시를 해 두기 위해 접혀 있었다. 그렇게 접힌 작은 삼각형에 구체성의 비밀이 적혀있었다. 그 비밀은 프랙털 도형처럼 우아하고 완전무결했다. 꿈속에서 그 문장 덕분에 다시 확신을 얻은 나는, 너무 행복해서, 받아 적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 이 섬은 내게 중요한 부분이 접혀진 한 권의 책이나 다름 없었다. 이 곳의 첫 이미지는 프랙털 도형처럼 조각난 도형들이었지만 그 부분들은 언제나 전체를 닮아 있었다. 각각의 덩어리들이 하나의 단독체로서 완결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전체로 향해 나아가는 그 열려진 양상이 좋았다. 그리하여 부분과 전체, 규칙과 불규칙, 유기성과 무기성 그리고 나와 너의 관계를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삼각형이어도 괜찮고, 육각형이어도 괜찮다. 그 어떤 도형이라도 상관없다. 이 곳은 이미 순환하고 있었으니까. 그 순환적인 움직임은 결국 원의 형태로 돌아갈 것이다. 무한대의 원. 영원을 향해 가고 있는 원. 때문에 나는 그 모든 순수함을 담아 영원성을 꿈꾼다. 영원성에 대한 욕망, 그것은 내가 진실로 바라는 아름다운 욕망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돌아가 나의 삶을, 나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끌어 안으려 한다.

그전에 나는, 나의 몸을 먼저 끌어 안아 보았다.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정직한 나의 몸을. 나는 태곳적으로 돌아가 엄마 뱃속에 있던 그 모습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나는 최대한 웅크린 채 팔로 원을 만들어 두 다리를 모았다. 나는 점점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알 수 없는 부드러운 힘에 이끌려 나는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다시 태어나기 위한 깊은 잠 속으로.

Epilogue

정신과 육체, 하나는 실체가 없고 다른 하나는 있지만, 그 둘은 함께 얽혀 하나의 천을 만들죠, 그 둘은 서로 다른 두 가지가 아니에요, 그 둘은 하나에요. 당신의 생각과 나의 여행, 그 둘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죠. 생각과 확장은 똑같은 무언가의 부분들이에요. 하나의 천이죠. 우리의 정신을 통해 당신과 나는 우리의 하루하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아요. 종종 어둡기도 한 그 하루하루 속에서 그 안에 있는 무엇을, 매 순간 안에 있는 뭔가를 끊임없이 찾으려 하죠!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주인 없는 그녀의 책상 앞에서 오래된 메모를 읽었다. 마치 나보란 듯 써놓은 글귀 같았다. 무엇을 끊임없이 찾는단 말인가. 이것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신기한 것은 아무도 그녀를 찾지 않는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그녀가 없었던 것 처럼, 아무도 그녀의 존재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애가 타는 것은 나뿐이었다. 나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그녀를 찾으려고 애를 썼지만 그 어떤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돌아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로? 표면 없는 평면으로? 아, 모든 것이 끔찍하다. 이렇게 나는 하나의 관계를 잃어버렸으니 말이다!

「“여러분의 이런 반응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제가 확실한 다른 증거를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움직일 수 없는 확실한 증거를 말이죠.” 그는 말을 마친 후 의자에 앉아 신발을 벗고, 다시 일어나 재킷을 벗었어. 자진해서 도와줄 사람이 있냐는 물음에 굿맨이 나섰고, 헌터는 사람들 틈을 뚫고 한쪽 벽 앞에 놓여 있는 소파로 걸어갔지. … 수학자들이 소파 주위로 모여들자 헌터는 엎드려서 팔을 그 상태로 꼭 잡아 달라고 부탁하고는 몸을 옆으로 뉘었지. 그러곤 다시 그 상태에서 몸을 마구 움직이더니 발 하나를 팔의 원 안으로 들이밀었어. 그는 조수에게 자기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 달라고 지시하고 또다시 같은 동작을 반복하더니 다른 쪽 발도 팔의 원안으로 집어넣는 데 성공했어. 그러면서 동시에 그는 몸통을 젖혀 발의 반대쪽 방향의 원 속에 머리를 집어넣었어. 그러곤 조수의 도움을 받아 다리와 머리가 서로 엇갈려 지나치도록 팔로 만든 원 속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네. 그때 저명인사들 사이에서 한결같이 못 믿겠다는 듯한 탄식이 새어 나왔어. 헌터가 사라지고 있었거든. 다리와 머리가 미끄러지듯 점점 빨리 그의 팔 속으로 빨려 들어가더라는 군.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듯 그는 거의 모습을 감춰가고 있었던 거지.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네. 완전히. 무엇 하나 남기지 않고.」

'기하학 섬으로의 여행' 전시작품

만족도

MYARTS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