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 인터뷰 날짜 : 2010.12.17
  • 인터뷰어 : 나비
  • 글 작성자 : 나비
  • Room, Forest, Sound로 명명되는 연작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이정민 작가의 작품은 희미한 이미지로 가득하다. 꿈결 같은 흐릿한 풍경 속에 알 수 없는 공허함이 깃들어 있고 나지막한 침묵의 기운이 감돈다. 인간의 본질적인 존재론에서 시작된 그녀의 작업은 그것을 인식하고 보여주는 과정에서 ‘침묵’과 ‘고독감’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가장 영향력 있는 소리는 침묵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고용한 공기의 흐름이 베어 있는 이러한 침묵이야말로 인간의 실존적인 고독감을 잘 나타낸다고 믿는다. 결국 그녀가 작품을 통해 표출하기 원했던 것은 사물과 사람 그리고 공간이라는 현존하는 세계를 크게 하나로 묶어 주는 ‘보이지 않는 맥락’, 혹은 그것들을 감싸고 있는 ‘공기의 아우라’인 것이다. 각각의 작업들을 살펴보자.



    Sound_oil on canvas_60.6 x 72.7cm_2010


    맨 처음 시작된 Room시리즈는(여기서 ‘room’이란 특정한 장소가 아닌 일상적인 공간을 뜻한다.) 누구나 존재해 본 적이 있는 보편적인 장소에서 출발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내적 공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Room은 곧, 어떤 거창한 개념이 아닌 지극히 소소한 일상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인간 실존의 중심에 놓인 심오한 장소이기도 하다. Forest시리즈는 울창한 숲이 우거진 풍경이 아닌 안개 속에 가려진 풍경을 보는 듯 하다. 작가는 이 시리즈를 안개의 ‘숨김’ 또는 ‘감춤’의 요소가 ‘위장’이나 ‘은폐’같은 사람의 심성과 비슷하게 느껴져서 시작한 작업이라고 한다. 고독과 외로움의 베어있는 각각의 작품마다 작가 특유의 점묘법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그 붓의 터치가 이어지면서 꽉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있는 듯한 공허한 아우라를 연출하고 있다.



    Forest-Loft_oil on canvas_(per each)162.2x130.3cm_2009


    이번 개인전(신한갤러리 2010.12.3~12.27)에서 가장 정성을 쏟았던 Sound시리즈는 작가의 지인들을 모델로 한 인물화 연작이다. 인물부분은 유화물감을, 배경부분은 펄 아크릴을 이용하여 서로 다른 재료에서 오는 질감의 차이가 느껴지는 작업이다. 각각의 작업이 작은 사이즈로 제작되었지만 여백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지라 작품을 보다 효과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이정민 작가는 다른 연작들과는 달리 갤러리 외벽을 옅은 회색 톤의 페인트로 덧칠했다. 그래서인지 은은함 속에서 인물들의 표정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그렇게 모여진 ‘소리’는 특정인을 그린 것이기는 하지만 결국은 가장 일상적인 얼굴들의 집합으로서 인간군상을 이루었으며 작가는 이를 ‘보통의 존재’라고 규정한다. 이 같은 이정민 작가의 그림을 두고 혹자는 따뜻하다 하고 혹자는 차갑다 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극과 극의 느낌 속에서도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대부분의 작품이 비슷한 색감의 회색 톤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그녀는 작업의 주제나 방향, 표현하려는 요소들에 있어서 객관성을 띄고 작업하려는 성향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물감 색을 뜻하는 것이 아닌 중간색을 지칭하는 ‘회색’이 자신이 작업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연유에는 개인의 개성이나 재능에 관계없이 ‘사실적’으로 ‘잘’ 그린 그림을 학습화시키는 미술 제도에서 벗어나 (‘사실적’으로 ‘잘’ 그린 그림이 아닌) ‘잘’ 그린 ‘사실적인’ 그림을 추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까지 담겨있다. 그녀는 테크닉이나 표현방식이 ‘리얼’해질수록 껍데기를 그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껍데기로 읽힐 수 있는 사실이 아닌, 인간의 눈으로 읽히고 경험하게 되는 입체적인 덩어리와 같은 ‘리얼함’이 전달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회화 세계를 시각화하고 있다.



    Knocking_oil on canvas_72.7 x 60.6cm_2009


    다양한 매체의 발달로 인해서 ‘회화’의 힘이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회화는 복제할 수 없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함이 있고 그 누구도 아닌, 오직 그 ‘화가’만의 손 맛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다. 화가 이정민이 말하는 회화의 매력을 들어보자면 사뭇 회화에 대한 진지한 애정이 느껴진다. 그녀의 지속적인 붓 터치 ‘회색 빛 침묵’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안에 이미 너무 많은 회화의 매력이 담겨있는 것이 아닐까. “회화의 매력은 판화, 사진, 미디어와 같은 매체와 달리 복제가 불가능 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복제할 수 없는 ‘아우라’에 끌립니다. 물론 다른 매체의 작품들도 각각의 아우라가 존재하지만 회화 자체가 지닌 아우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이 있죠. 그리고 또 다른 매력은 회화, 그 중에서도 유화(oil painting)는 사람과 비슷하다는데 있습니다. 까다롭고 다루기 힘들며 자연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노화되지만 그럴수록 더 깊이가 더해지니까요. 그래서 다른 매체들을 시도해 보더라도 시작과 끝은 항상 회화로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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