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작가

작가 인터뷰

박정훈
평범한 사진
2010.09.08

인터뷰 날짜 : 2010.06.29
인터뷰어 : 김연숙
글 작성자 : 나비

종종 사진은 우리를 멈춰서게 한다. 사람의 이목을 끌기 때문이다. 이미지가 사람을 끌어당기고 우리는 거기에 붙잡히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고통이나 죽음 등 슬픔의 순간을 기록한 사진들에서 더욱 두드러지기 마련이다. 피사체를 감성적으로 담아냈다거나 회화처럼 부드러운 풍경 사진에서도 마찬가지다. 혹은 연출된 사진이나 유명인이 등장하는 사진에서도 우리는 문득 시선을 고정시킨 채 사진을 탐닉하게 된다. 하지만 과하지는 않더라도 렌즈와 대면한 고요한 이미지가 더 인상적일 때가 있다. 너무나 평범해서 그냥 지나칠 법한 사진 중에도 우리를 붙잡는 것들이 분명 있다. 박정훈 작가의 사진이 그렇다. 따뜻하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다. 침묵을 유지하면서 감정을 배제한 사진가의 시선은 오직 일상의 공간에 머물러 있다. 너무나 평범해서 건조하기까지 한 그의 사진, 그 흑백의 이미지들을 무심코 바라보자니 가슴 한 켠이 시려오는 것은 왜일까.

검은 빛-숲길 가변사이즈 디지털 c-print 2006-7

일민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격물치지>展에 참여하고 있는 박정훈 작가를 만났다. 그가 처음으로 참여하는 그룹전인 이번 전시는 전국에 흩어져있는 한국적인 경관과 문화재 그리고 풍속과 기물을 다룬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사물을 연구해 이치에 이른다’는 뜻으로 통용되는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개념은, 참여한 작가들이 전국을 누비며 포착한 다양한 이미지들로 구현되고 있었다. 박정훈 작가 역시 전국에 흩어져있는 향교와 서원을 중심으로 지난해 가을부터 올 봄까지 작업을 진행했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에 관심이 많고 겨울에 다니는 여행을 좋아한다는 그.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는 그에게 더욱 짜 맞춰진 듯한 느낌이다. 유독 길었던 지난 겨울, 그 혹한의 시간이 그에게는 오히려 따뜻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박정훈 작가의 사진에는 ‘한국적인 것’이 담겨있다. 또한 ‘한국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까지 담겨있다. 이것은 전통적인 묵화(墨畵)가 모티프가 되고 있다. 묵화를 사진으로 나타내고 싶다는 그의 작업 키워드는 아마도 ‘일상성’에 있지 않을까. 일상적인 공간의 평범한 이미지가 그의 작업에서는 되려 특별한 서사로 다가온다. 사람 한 명 없는 텅 빈 공간, 그 비움의 여백에는 못다한 이야기가 숨어있는 것만 같다.
이러한 특징이 잘 나타난 작업이 <검은 빛>이다. 깊은 밤, 담벼락에 비친 나무가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묵화가 되었다. 전통적인 묵화를 차용하여 적막함 속에 피어난 어둠과 빛의 공생관계를 아름다운 이미지로 담아낸 작품이다. 이토록 신비로운 그림자를 보고 있으면 하나같이 특별한 장소를 상상하기 마련이지만 배경이 된 모든 곳들이 작가가 두 다리로 마실 삼아 갈 수 있는 거리에 한해서만 찍었다고 한다. 집 주변의 대학교에서, 아파트 단지에서. 우리가 무수히 지나치는 밤의 모든 순간들은 항상 이렇게 빛나고 있었나 보다. 밤이 깊을수록 검은 빛이 스며든다는 걸 그의 사진을 보면서 깨닫는 순간이다. 은희경의 소설 <새의 선물>에 나오는 구절과도 맞닿는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도 깊은 것을.”
대안공간 건희에서 선보였던 <오래된 습관>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종교적 행위, 습관처럼 익숙해진 행위를 통해 인간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 존재인지 말해주고 있다. 불교적인 색채를 띄고 있는 <적멸의 순간>은 ‘너무나 고요해서 해탈에 이른 상태’를 뜻하는 불교 용어 ‘적멸’(영어로는 nirvana, 불교영어에서는 stillness라 명하는)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약속의 땅>은 전통적으로 옛스러운 물건들을 박물관에 놓아둠으로써 그것이 마치 우리가 돌아가야 할 농경사회의 이상향처럼 보여지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박물관에 전시되는 순간, 우리는 그 시절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아마도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한국적인 장소’나 ‘한국적인 미’라고 생각하도록 강요하는 장치가 아닐지 의구심이 든다.
등산을 좋아한다는 박정훈 작가는 지방의 명산이 아닌 서울에서도 쉽게 갈 수 있는 북한산, 관악산, 인왕산 등을 오르며 <먼 산>을 찍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산은 조연이고 허공이 주연이다. 하늘을 찍으려던 작업이었지만 허공만을 찍을 수가 없어 산을 걸쳐놓았다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안개에 둘러 싸여 있는 듯한 희뿌연 이미지를 보면서 산 이외의 풍경을 상상해 보았는가. 작가는 눈앞의 풍경에 시선을 고정시킬 것이 아니라 사진의 밖까지 헤아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작가는 바깥을 보도록 유도하는 가이드이고 그 나머지는 보는 이가 채워야 할 몫인 것이다.

약속의 땅 가변사이즈 디지털 c-print 2009

2006년부터 사진을 시작했다는 박정훈 작가는 늦게 시작한 만큼 집중과 노력의 시간을 많이 가지려 하고 그렇게 사진을 알아가면서 책임감을 많이 갖게 된다고 한다. 요즘 들어 ‘내가 굉장히 위험한 걸 하는구나. 항상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카메라에 대한 남다른 철학을 내비치기도 했다.
“사진기는 위험한 물건이에요. 총 같은 것이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서 다뤄야 해요. 오죽하면 찍는다는 표현이랑 쏜다는 표현이 같겠어요. 똑같이 ‘shot’이잖아요. 그래서 사진 찍는 사람은 특히나 조심해야 하고 셔터를 아껴야 해요.”

예술은, 예술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박정훈 작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러한 미래를 위한 준비기간, 그러니까 내공을 쌓는 시간이리라. 달력이나 포스터로, 액자 없는 오리지널 프린트로, 형태는 다양해지겠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소장한다는 것. 그는 자신의 사진이 누군가의 마음에 위안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집에서 밥 먹다가도 슬쩍 보게 되는 그런 평범한 작품이기를 원한다고 했다. 이러한 사고는 사진 자체의 힘을 ‘일상성’에서 찾는 그의 미학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김수영 시인처럼 내 삶을 늘 반성하며 살고 싶다는 그의 겸손함이 작업에 더욱 매진할 수 있는 힘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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