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 인터뷰 날짜 : 2010.05.13
  • 인터뷰어 : 나비
  • 글 작성자 : 나비
  • 아르카디아(Arcadia). 고대 그리스의 산악지역이었던 이 곳은 목가적이고 고립적인 특징으로 인해서 서양에서는 줄곧 ‘낙원’으로 묘사되곤 했다. 하나의 지역이 ‘유토피아’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현대에 이르러서는 다양한 분야에 이 단어가 등장한다. 아르카디아.
    지난 해, 성태진 작가의 개인전 제목에서 이 단어를 발견하고서는 이내 작품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르카디아를 꿈꾸며. 작가는 어떠한 이상향을 추구하길래 아르카디아를 언급했을까. 나름대로 꽤나 깊이 있는 철학이 담겨있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은하철도 999’의 하록 선장이 타고 다니던 ‘아르카디아 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니 이 작가, 왠지 매니아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낙장불입  70 x 90cm  목판에 양각 후 채색  2006

    아니다 다를까,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태권 브이가 대다수요, 성냥개비를 입에 물고 총을 들고 있는 익숙한 ‘영웅본색’의 한 장면이 펼쳐지는 가 하면, 삼국지의 심오한 내용까지 소재가 되고 있다. 여기에 감성적이면서도 허를 찌르는 배경의 텍스트 까지. 무엇 하나 보통은 아니란 느낌이다. 그런데 이 태권 브이를 가만히 살펴보자니 우리가 기억하던 늠름하고 당찬 로봇이 아니라 만년 백수일 것만 같은 무기력하고 소심한, 그런 태권 브이다. 아, 이것 참. 어딘지 모르게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 청년들의 초상과 오버랩 되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차가울 것만 같던 태권 브이가 참 친숙하게 다가온다. 불룩 튀어 나온 배에 늘어난 추리닝 바지를 입고 ‘자력갱생’을 외치는 태권 브이를 보고 있으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의 모습은 좀 처럼 찾아보기 힘들고 오히려 삶에 대해 고뇌하면서도 희망을 노래하고자 하는 소시민적인 태권 브이가 인상적이다.

    판화를 전공한 성태진 작가의 작업방법 역시 매우 독특하다. 그는 나무 판에 그림과 글을 조각 칼로 새긴 후에 자칫하면 촌스러울 수도 있는 형광색과 원색들로 채색하여 작품을 제작한다. 그의 작업은 판화처럼 나무에 조각은 하지만 그 위에 바로 채색을 해버리고 여러 장이 될 수도 있는 작업을 단 하나의 작품으로 마무리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작품 배경에 등장하는 텍스트인데, 만화주제가는 물론이고 유행가에서 비장함이 감도는 시조에 이르기 까지 찬찬히 읽어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나면서도, 작품을 다시 한 번 음미하게 된다.



    아르카디아  122 x 80cm  embossed works on wood  2008

    미술작가로는 마이클 스코긴를 좋아하면서도 그보다 더욱 영감을 주는 사람은 조지루카스와 오우삼 감독이라는, 조금은 엉뚱한 면을 지니고 있는 성태진 작가. 자신의 유년 시절을 지배했던 TV시리즈의 만화에서부터 한때 줄기차게 보았던 홍콩 르와르 영화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작품으로 옮겨가고 있는 성태진 작가를 보면서 다시 한번 그가 추구하는 아르카디아가 궁금해진다. 태권 브이 시절처럼 우주의 평화가 찾아오는 것일까? 아니면 발해의 부활이라도 다시 한 번 꿈꾸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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