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작가

작가 인터뷰

정치구
동물로 조합한 예술
2010.06.28

인터뷰 날짜 : 2010.05.11
인터뷰어 : 김연숙
글 작성자 : 박태용

서울시립대학교 환경조각학과를 졸업한 정치구 작가는 2004년 MBC 구상조각대전 입선으로 미술계에 발을 들여놓는다고 생각했지만, 어려운 작업 환경으로 인해 잠시 직장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그는 다시 미술 작업에 매진하면서 2008년 에로티시즘 공모전 입선과 함께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다. 2009년 문신미술관 New work 공모 당선, 암중모색전 (인사동 갤러리 아이), 월드스마일아티스트전 (부산시 금정문화회관) 과 2010 젊은 작가 소품전 (광명시 뉴욕갤러리) 등의 단체전을 거쳐 이번 5월에 숙명여자대학교 문신미술관에서 [작은 눈 세모 코] 첫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실란트 코뿔소 25x43x44cm, 92x73cm silcone sealant, FRP 2010

정치구 작가의 작품에는 멸종위기의 동물들이 등장한다. 멸종을 앞 둔 동물들은 과거 영광의 모습을 담은 자신들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때로는 동물들이 처한 어려운 환경에 대한 해결을 바라는 그림도 있다. 따라서 동물을 자연과 동일한 카테고리로 바라본다면 그의 작품은 인간과 자연의 담론을 관객들에게 이끌어 내고 있다. 그는 작품을 통해 다양한 층위의 담론을 이끌어내고자 했는데, 크게 멸종위기의 동물에 대한 인간 행동에 대한 환기와 반성, 과거와 현재에 진행되어온 시련과 좌절의 순환, 그러한 담론을 부정적 미래로 그리지 않고 희망과 극복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첫째 인간과 동물은 원시부터 서로의 생존을 위해 서로를 위협하는 관계였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고, 동물을 정복하게 되면서 많은 동물들을 멸종시키고, 평화로운 공존은 멀어지고 파괴와 멸종의 역사로 점철되었다. 이것은 동물과 구별되는 세계를 꿈꾼 인간의 이상이었으며, 근본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분리였다. 이제 그러한 멸종, 혹은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오히려 인류에게 고통이 되어 되돌아 온다는 것을 깨닫고 멸종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코알라, 북극곰, 백호, 반달곰, 코뿔소 등등의 동물들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현대인들의 상징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고도로 발달한 과학과 물질의 풍요 속에서 현대인들은 자연으로부터 고립된 채 메마른 삶을 살아가면서 문명의 병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동물들은 여전히 순수한 자연의 일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자연으로부터 스스로 고립된 인간들은, 다시금 동물을 통해 자신들의 본질인 자연과의 어렴풋한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그러한 점에서 본다면, 정치구 작가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경오염과 살육으로 인한 멸종위기에 있는 동물들이 현대인들의 잃어버린 본성에 대한 상기이며 향수일지도 모르겠다.
둘째,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자신을 그린 동물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소외, 우울과 멸종의 공포가 깃든 눈과 과거의 영광을 바라보는 미소가 깃든 묘한 표정으로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그림은 평면이며, 2차원의 틀 안에 담겨져 있는 과거, 순간의 포착이다. 그에 반해 그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3차원적 실란트 조각 동물은 현재의 살아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관객은 이 두 가지의 모습을 동시에 바라보게 되면서 과거와 현재의 시간 속에서 첫번째 담론을 더 확장된 영역에서 바라보게 된다. 그림과 동물 사이에 형성되는 담론의 영역에는 시련과 좌절을 겪는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것은 더 나아가 관람객의 시선으로 확장되면서 그것을 바로 보는 것 자체가 바로 `관람객 자신이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의 모습은 아닌가`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즉 `멸종동물이 그림을 바라보다`가 확장되어 `인간이 작품을 바라보다`로 되는 동시에 멸종위기에 처한 인간사회의 자화상을 드러내고 있다. 다시 말해 회화와 조각 사이에 공간이 관계를 형성하고, 그 전체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관계와 의미가 형성되는 순환의 고리가 점점 확장되어 변증법적으로 변화 발전한다.
마지막으로 정치구 작가는 이러한 담론- 인간과 동물(자연), 살육과 멸종, 시련과 좌절, 과거와 현재, 파괴와 발전, 공존과 평화 등등- 을 긍정적 시선으로 풀어내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풀어내고 있다. 그것은 그의 작품이 전반적으로 우화적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서 멸종위기에 있는 동물들은 만화적 요소가 강하게 느껴진다. 그 형상은 귀엽고 포근한 이미지, 사랑스럽고 유쾌한, 때로는 발칙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만들어져 있다. 작가 스스로 말하듯, 동물들을 의인화하여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낸 것이다. 동물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타자(관람객)와의 관계를 만들고, 현재의 모습에서 미래를 이끌어내는 희망이 거기에 있다. 시련과 고통의 과거에서 출발한 멸종위기 동물들과 이 시련을 바라보고 있는 관람객이라는 희망이 하나의 작품으로 귀결되면서 시련, 좌절, 희망, 순환, 그리고 희망이란 네 단어가 표현되어 있다.

정치구 작가가 작업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멸종위기에 있는 동물들을 캠퍼스 위에 그리거나 찰흙을 작업한다. 그리고나서 석고주물에 FRP(폴리수지)로 캐스팅 작업을 한다. 그리고 캐스팅된 동물들 위에 색을 정한 실리콘 실란트(Silicone Sealant)를 초벌을 하고 2일 정도의 경화 후에 다시 재벌로 2일을 둔다. 그리고 이목구비를 정교한 조각칼로 오려낸 후에 다시 다양한 색으로 이목구비를 채워나간다. 중간의 초벌과 재벌 과정에서는 미리 준비한 플라스틱 붓으로 거칠게 터치를 넣어주고 주제에 따라서 그 붓의 터치를 조절해서 마치 동물들의 털과 혈관을 상징하듯 다양한 느낌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특별히 그가 다른 조각가들이 자주 사용하지 않는 실리콘 실란트를 쓰게 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다루는 작품의 주제는 시련, 희망, 미래, 그리고 순환인데 시련이 출발점이고, 범위는 다양하지만 소수의 소외 계층이 느낄 수 있는 시련이 가장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한 생각에 어울리는 재료를 고민하던 어느 날 우연히 잠깐 볼 일을 보러 화장실을 들어 갔는데 타일과 돌 사이에 있는 실리콘 실란트를 보게 되었다. 우리가 창을 봤을 때 창은 어떤 유리를 ?고 창은 샷시는 어떤거다 라고 생각할뿐 그 안에 마감인 실리콘 실란트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치기 마련이다. 이러한 물성은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모든 곳에서 함께 공존하기 때문에 바로 소수자들이란 생각으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재료에 대한 물성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해서 우리가 평소에 알던 흰색, 회색, 검은색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색을 사용하면서 실험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최대한 물성에 대한 의미를 한 번 찾아보면서 도전한 것이었다.

실란트 백곰(입체) 35x40x36cm silicone sealant, FRP 2010

정치구 작가의 작업에 있어서 그 시작점이 되는 시련은 자신의 삶에서 얻어진 것이기에 누구보다 진실함이 느껴진다.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해서 그 좌절과 아픔을 극복하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작가로서 그가 평생 탐구해야 할 주제인 것 같다고 말한다. 우선 다니던 직장을 부모님 몰래 그만두고 작업을 해 온 것이 그에게는 당당하지 못했던 시간들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미술부를 통해서 익히게 된 미술 공부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경험하면서 점점 멀어져 갔다. 다시 붓을 쥐게 되고, 공모전 당선과 첫 개인전을 연 후 가족들에게 알렸을 때, 오히려 부모님께서 대견해 하셨다고 한다. 한편 이번 전시를 준비하던 중 화재 사고로 몇몇 그림이 훼손되었다. 다행히 작품이 모두 타 죽은 것이 아니라 불길 속에서 살아남아 있었고, 다시 한번 작품을 대면했다고 한다. 이런 시련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은 다양한 사회 경험을 통해 얻어진 삶의 지혜와 긍정적 자세, 그 자체였다. 때문에 그는 다른 작가들의 오타쿠적인 습성을 지양하면서, 취미생활, 사회활동을 하면서 삶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가끔 등산을 하고, 친구들 따라서 아이쇼핑도 하고, 커피숍도 많이 가고 영화도 많이 보러 다니고, 여행가듯이 차 끌고 교외로 훌쩍 떠나가기도 하면서 다양한 경험으로 작품의 소스를 획득한다고 한다.
정치구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작은 눈 세모 코’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작가가 스스로 말하는 자신의 자화상이다. 작은 눈과 세모 코라는 자화상 연작 작업이 지금의 전시회가 된 것이라고 한다. 무거운 주제를 타이틀로 정하는 것보다 동화 속 이야기 같은 작품 분위기로써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것이다. 지금 그는 제2의 전시회를 희망하고 있다. 좀 더 관객들에게 다가가서 주제를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구상하고 있다. 그의 독특한 이름도 남다른 의미가 있는데 다스릴`치`, 아홉`구`이다. 여기서 아홉`구`라는 한자가 이름에 들어가면 천하를 뜻하는 것이라, 천하를 다스리는 뜻으로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그 이름의 뜻처럼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미술가가 되어 모든 이들의 가슴에 그의 메시지를 심고, 감성을 자극하여 다스리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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