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작가

작가 인터뷰

임수진
불완전한 폐쇄, 그 감각의 은유
2010.06.25

인터뷰 날짜 : 2010.04.15
인터뷰어 : 나비
글 작성자 : 나비

“너무 야위었어. 전엔 뚱뚱했었는데 지금은 말랐어. 왜 그래? 자신감을 가져.”
누구한테 하는 이야기냐고? 비누에게 하는 말이다, 사람이 아니라 비누에게. 영화 <중경삼림>에서 여자친구와 헤어진 양조위는 자신의 방에 있는 사물들과 일방적인 대화를 하며 위로의 시간을 보낸다. 닳아 없어진 비누에게 야위었다고 말하는 그 심정, 오죽했을까. 문득 임수진 작가는 어떠한 마음으로 ‘Soap Man’을 만들었을지 궁금해졌다. 사람 모양을 한 이 비누는 종종 화장실에 전시(?)되곤 하는데,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Soap Man’은 점점 말라가게 된다. 생각해보니 조금 슬프기도 하다, 누군가에 의해 닳아 없어진다는 것이…… ‘Autistic Toy’, ‘Sharing Head’, ‘Cloud Man’ 등 제목에서 부터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녀의 작품 이미지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우면서도, 각 작품들의 배경에는 저마다의 특별한 서사가 숨겨져 있는 듯 하다. 사물 사람처럼 생각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임수진 작가를 만나보니 의인화를 거쳐 탄생하는 그녀의 작품들이 마치 작가의 심리적인 고백처럼 느껴졌다.

sharing heads 200x60x12cm styrofoam 2007

“어릴 적 부터 사물을 사람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엄마가 계란 후라이를 하시면서 무심코 노른자를 툭 터트리는 그 모습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진다거나 껌이 길 바닥에 놓여 있을 때 누군가 밟고 가면 그 껌이 마치 눌려 터지는 것 같기도 했죠. 때로는 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곧 깨질 것 처럼 아파하는 것 같아서 저한테는 마치 비명처럼 들리기도 했어요.”
때로는 유치하기까지 한 상상이 끝이 없었다는 임수진. 아마도 어린 시절의 습관에서 비롯된 이토록 예민한 감성들이 지금까지 작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니 비누가 사람이 되고 혹은 사람이 비누가 되지 않았을까. 폐쇄적인 성향이 내재한 임수진의 작업은 신체적인 비유가 지배적인데, 한껏 몸을 웅크리고 있는 자폐 인형(Autistic Toy, Autistic Sofa), 사람으로 변신한 흔들의자(Skiing Chair), 바닥에 대(大)자로 뻗어 깔개가 되 버린 사람(Rug Man), 건물을 뚫고 나간 풍선 인형(Soaring House) 등 작업을 살펴보면 내면의 감정을 사람의 형상으로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그마한 구슬 형태에 사람이 맺혀있는 ‘Egg Ball’과 ‘Scream’은 관람객이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데, 구슬끼리 부딪히도록 밀어 놓고 돌아서면 그 부딪힘의 소리가 여운으로 남는 공감각적인 작품이다. (지금은 한 손에 쥐어지는 핸디한 사이즈이지만 더 큰 사이즈로 제작해 볼 생각은 없는지 묻자, 그렇게 되면 벽에 매달 수가 없어서 바닥에 굴려야 할지도 모른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의 작업은 스펀지, 털실, 클레이, 풍선 등 일상적인 다양한 재료들이 의자, 계란 등의 형태를 빌어 자폐적인 형상으로 탄생한다는 것도 흥미롭다.
“제 작업은 겉으로 보여지지는 않지만 누구나 겪고 있는 심리적인 것들과 관련된 것들이 많아요. 바로 제가 겪고 있는 일들이기도 하죠. 저는 심리적인 감정이나 생각들을 물리적으로 받아들이는 성향이 있어서 그런지 신체적으로 해석하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이러한 성향은 드로잉 작업에서도 잘 드러난다. 머리나 발 등 신체의 일부로 표현되는 작품 들 중에는 머리 속에 온통 구름이 피어 있다거나 동글 동글한 말풍선처럼 봉긋 떠오른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무언가가 끊임없이 증식하고 있는 것만 같은 이러한 이미지들은 마치 그림 일기를 보는 처럼 아기자기하게 다가온다. 벽면에 즉석에서 작업을 하는 ‘Wall Drawing’과 같은 경우는 공간과의 조화를 이루었을 때 더욱 빛이 난다. 이러한 드로잉은 즉흥적인 매력이 있기는 하지만 그만큼 신중해야 하고 고생이 뒤 따르는 작업이기도 하다. 원하는 작품이 나오지 않으면 새 하얀 벽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어려움도 마다해야 한다. (지난 3월, 갤러리 아이엠아트에서 ‘Wall Drawing’ 작업을 하면서 피멍이 든 그녀의 손가락을 보았을 때, 목탄의 부드러운 느낌과는 달리 그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전시가 끝나면 또 다시 하얀 벽으로 돌아갈 공간을 생각하면 관객 입장에서도 아쉬움이 상당히 큰데 작가의 마음은 오죽할까. 아니나 다를까, 전시가 끝나고 페인트 칠을 하면서 작품을 지워 나갈 때면 항상 눈물이 날 정도로 허무하다고 한다. 기록이 되어버리는 사진 이외에 결과적으로는 고스란히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일회적일지라도 전시장의 그 공간에서 만큼은 완전하고 완벽한 작품이 되는데, 그래서 더욱 가치 있는 작업처럼 여겨진다.

yolk man 5x5x3cm clay 2006

임수진의 작업은 공간에 따라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성격이 있어 완성작은 늘 작업실에서가 아니라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유독 대형 사이즈의 작품을 볼 때면 작업하면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았을까, 설치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작업 보다는 오히려 그녀의 건강이 걱정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완성되면 너무나 뿌듯하다”는 확신은 모든 예술가들의 마음을 대표하는 목소리 같았다. 아마도 그 의지, 고통과 환희가 공존하는 의지가 바로 임수진만의 은유, 임수진만의 조형 언어로 탄생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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