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작가

작가 인터뷰

박승훈
공간과 시간을 엮는 사진가
2010.06.10

인터뷰 날짜 : 2010.03.20
인터뷰어 : 나비
글 작성자 : 나비

나는 박승훈의 사진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아라크네가 생각났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직조기술이 뛰어났던 여인, 아라크네 말이다. 사진을 보고서 웬 아라크네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지만 눈앞에 보이는 작품 자체 보다는 그의 작업 과정이 먼저 떠올랐다고 설명하면 조금은 공감이 갈 것이다. 생각해보라, 어두컴컴한 암실에서 빼곡하게 필름을 엮고 있을 그의 모습을. 옷감을 짜듯이 일일이 필름을 엮어서 작업하는 그의 작품은8x10홀더에 16mm영화용 필름을 붙인 후, 수작업과 디지털 작업을 거쳐 완성된다. 자세히 살펴보면 손의 흔적, 그러니까 그의 지문까지 남아있는 아주 정성스럽고 꼼꼼한 작업이다.
이러한 작업을 그는 ‘Textus’로 설명하고 있다. ‘Textus’는 직조(織造, texture)또는 텍스트(text)를 뜻하는 그리스어로, 파편화된 사진 조각들이 무수히 반복되는 그의 작품을 ‘짜는(織) 것’으로 연결시켜 볼 수 있겠다. ‘Textus’ 작업은 현재까지 ‘puzzle’, ‘seperation anxiety’, ‘nothing’ 시리즈로 세분화되었다. ‘Textus’가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주제라면 소제목들은 각각 도시, 그 속의 사람, 도시의 상징물, 대상의 분위기를 조각 내고 재구성한다.
“사진에 내용을 많이 넣는 편이 아니에요. 저는 일정하게 표현하고 싶은 형식을 만든 후에 그에 주제를 찾거든요. ‘이런 방법으로 작업을 해야지’ 생각을 하고 그 대상을 찾는 거죠. ‘보다 나은 설명(better explanation)’같은 경우는 사진을 나열해서 촬영한 후에 전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번에 볼 수 없는 뷰(view)를 한번에 보여주고 싶었는데 어디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한강을 촬영하게 된 거죠. 산이나 바다를 엮으면 재미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텍스투스(textus)작업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갔어요. 주로 도시를 많이 엮었고, 도시 안에 있는 사람들을 엮다가, 도시 안에 있는 상징물들도 엮어 보고……. 엮기에 적당한 장소들을 찾아 다닌 셈이죠.”

north side of han river after rain 135 x 100cm Digital c-print 2007

‘textus’ 이전에는 ‘보다 나은 설명(better explanation)’이라는 시리즈로써 한강의 다리를 파노라마 식으로 나열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35mm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하여 강변북로, 올림픽 대로 등 한강의 다리들을 걸어 다니면서 일정간격을 두고 기계적으로 촬영한 작업들이다. 얼핏 보면 모두 비슷해 보이는 다리들이지만 각각의 풍경들에는 서로 다른 계절감과 시간성이 담겨있다. 게다가 이 모든 풍경을 한 화면에서 볼 수 있으니 얼마나 괜찮은 설명인가.

다시 ‘Textus’로 돌아와서 프랑스에서 진행했던 작업들은 얘기해 보고자 한다. 마르세유 지역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촬영한 이 시기의 작품들은 회화적인 느낌이 강하다. 한국에서 떠날 무렵에 구상했던 ‘마르세유 대성당’의 경우는 성당의 정면과 측면을 각각 촬영하여 총 네 장을 엮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각각의 사진 마다 서로 다른 햇빛과 그로 인한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또한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하나로 모아 놓음으로써 피카소로 대표되는 예술사조인 큐비즘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 동안 퍼즐 형식으로 짜맞추기를 했다면 이 당시의 작업들은 더 많이 조각을 냈다. 같은 장소에서 무수히 조각난 이미지로 촬영된 피사체들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또한 그는 올 겨울에는 홍콩아트페어와 맞물려 새로운 작업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번 신작을 통해서 야경으로 대표되는 홍콩을 조각난 이미지로 감상할 수 있다.

이렇듯 그의 작품에는 가로와 세로의 수열적인 구조 속에 다양한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시·공간을 읽어 내기 위한 텍스트는 직물의 씨줄과 날줄이 합쳐진 옷감처럼 교차하면서 시각적인 것 이상으로 복잡하고 다양한 의미체계를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사진 형식을 선보인 그의 앞으로의 작업들도 내심 기대된다.

seperation anxiety #018-1 100 x 125cm Digital c-print 2009

‘지루한 풍경’시리즈로 작업하고 있는 김윤오 사진작가를 좋아한다는 그는 관광학과 출신으로 여행을 하면서 글로 적는 일이 많아지자, 텍스트의 번거로움을 여행사진으로 대체했다. 여행을 이미지로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사진으로 전향한 셈이다. 처음의 출발이 관광학이었듯이 여행이 취미라는 그는 그 동안 30~40여 개국을 다녔다고 한다. 이쯤 되니 그가 얼마나 여행이 그리운지 알 것 같았다. 계속되는 전시로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그는 그 동안의 고단한 작업에서 벗어나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여행을 꿈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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