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작가

작가 인터뷰

김지희
얼룩말 가면을 쓴 욕망
2010.05.25

인터뷰 날짜 : 2009.12.05
인터뷰어 : 나비
글 작성자 : 나비

김지희의 작품은 마두의 여성이다. 얼룩말의 탈을 쓴 여성. 그것은 곧 그녀 자신이기도 하다. 그녀는 왜 반인반수의 이미지로 자신을 그려냈을까? 이런 형상은 신화 속에서나 가능한 것들이 아니었었나? 게다가 그 많은 동물들 중에 왜 ‘말’이었을까? 사실 마두 여성이 탄생하기 전까지 양, 호랑이, 얼룩말 등 여러 동물들의 머리를 조합한 드로잉을 벽에 붙여놨었는데 그 중에서도 흑백 패턴에서 오는 시각적 효과가 명확한 얼룩말 드로잉이 단연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특히나 ‘말’이라는 동물이 상징하는 성적(性的)인 이야기와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욕망의 세계가 일치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마두 여성을 캐릭터로 작업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작업의 시발점은 명화를 차용한 드로이잉었는데, 그녀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명화 드로잉이 연필을 시작으로 컬러로 옮겨 간 것이다.

미와 사랑의 알레고리 132 x 72cm pen pencil on snow white paper 2008

“미술사를 좋아했고, 명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명화라는 것은 고급스럽고 세련된, 그런 인식이 강하잖아요. 그런데 명화라는 게 성적이거나 에로틱한 작품들이 너무 많아요. 한마디로 고급 베일을 쓰고 있는 거죠. 그 안에 다 욕망을 품고 있는데 말이에요. 제 드로잉에는 명화에 등장하는 여성들만이 얼룩말 마스크를 쓰고 있어요. 패러디한 명화가 작품 제목이 되었고요.”

그녀가 말했듯이 명화 속에는 에로틱한 욕망이 숨겨져 있다. 어디 명화뿐만 이겠는가. 누구나 한번쯤은 음탕하고 불순한 생각을 한다. 여성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이러한 욕망을 갖는 것 조차 금기 시 하는 분위기이다. 김지희는 여성, 그리고 여성작가로써 이러한 분위기가 예술가가 되기 위한 방해물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겉으로는 교양 있는 척 욕망이나 욕구를 드러내는 것은 금기인양 여기며 살아가는 내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고. 물론 그녀의 작업도 지금은 100% 솔직하지 못하다. 가면을 썼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메타포로 작용하여 그녀가 은유적으로나마 작업 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목소리를 대변해준다. 작가 자신이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이 기도한 마두의 여성은 그렇게 형상화 되어 거침 없는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녀의 작품에는 마블링 기법이 자주 등장한다. 방향을 종 잡을 수 없는 화려한 마블링 배경은 마치 꿈 속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환각의 상태로 빠져드는 것 같기도 하다. 현실을 벗어난 욕망의 세계가 이러할까. 일상에서 벗어나 그 어떤 욕망도 숨김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자유의 공간, 이 곳에서 마두의 여성은 솔직하고 당당하게 관객을 응시한다. 그녀는 조용히 작업을 하다 보면 꿈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하는데 가끔씩은 이렇게 작업을 통해서 꿈을 정리하는 것 같다고 했다. 어쩌면 이 몽환적인 마블링이야 말로 그녀의 무의식이 반영된 세계일지도 모르겠다.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어제 밤에 꾸었을지도 모르는 바로 그 꿈 말이다.

a Nightmare 130 x 162cm acrylic marbling on canvas 2009

그녀가 한동안 꿈을 꾸었던 곳은 고양이었다.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기간이 끝남으로써 또 다시 이사 준비를 해야 하는 그녀는 공허함이 이리 큰 줄 몰랐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 아쉬움은 아마도 몰입했던 시간들의 깊이와 비례했으리라.

“그렇게 넓은 스튜디오는 처음 가져보는 것이기도 했지만 저보다 훨씬 월등하신 분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사사로운 생활들을 같이 하며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좋았어요. 제가 접해보지 못했던 매체들, 경험해보지 못했던 세계를 알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고양에 오면 항상 마음이 설레였어요. 신세계를 만난 것처럼요. 저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죠. 이곳에서는 무언가 막혔던 것들이 뚫리는 느낌이었으니까요.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들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느끼고, 배우고, 소통했던 그 동안의 꿈 같은 시간들 덕분에 그녀는 분명 성장했다. 그 여름 밤의 이미지처럼 우연한 순간에 그녀와 다시 마주할 날을 꿈꿔 본다. 그녀는 또 어떤 가면을 쓰고 돌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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