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작가

작가 인터뷰

신리라
오후의 발견
2010.01.13

인터뷰 날짜 : 2009.09.02
인터뷰어 : 김연숙
글 작성자 : 나비

#1
달콤하다. 신리라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미온의 공기 속에 따뜻한 햇살과 잔잔한 바람을 느끼며 어느새 낮잠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다. 여기에 라디오 볼륨까지 낮게 흐르고 있다면 이것보다 더 평온한 휴식은 없으리라. 낮은 지붕, 회색 빛 담장, 촌스러운 간판...그녀의 그림은 무한히도 아날로그적인 일상들이 차곡 차곡 정리 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그녀가 그리고 있는 것은 전원생활에서 경험하고 있는 지극히 소소한 일상이다. 그녀가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 본 풍경들은 화려하고 복잡한 도시의 그것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것은 이른 아침도 아닌, 늦은 저녁도 아닌, 적당한 그 시간의 ‘오후’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함이다. 조금은 무료해 보일지라도 평화로운 이 시간과 공간, 그곳은 텅 비어 있는 듯하면서도 충만하고 가득하며 풍요롭기 그지 없다. 오후는 바로 그런 시간들이다. 그녀는 이 축복의 시간들을 가리켜 ‘오후의 몽타주(Afternoon Montage)’라고 명명하였다.

오후의 몽타주 130.3 x 162.2cm oil on canvas 2007

#2
“붓을 들기 전까지 작업을 구상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계획하는 단계는 굉장히 에너지 넘치지만 스트레스도 받고 그래요. 그런데 막상 작업을 시작 하면 좀 차분해지고 복잡했던 것도 정리 되면서 무념무상이 되죠. 붓을 들기 이전 단계는 머리 아프지만, 그 이후 붓을 들고 작업할 때는 저 스스로도 정화되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 그 시간들이 좋은 거 같아요.”

그녀에게 이토록 평온함을 가져다 준 ‘오후의 몽타주’ 작업은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레 가까운 주변 풍경을 그리면서 시작되었다. 한 오후 3시, 아니 5시, 아마도 그 무렵쯤으로 기억한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자동차도 별로 없는 그 적막함 속에서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던. 넋 놓고 풍경을 바라보기도 하고,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했던. 그 때쯤의 풍경들이다. 그런 시간들이 한가로웠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오르게 해주었다. 그녀가 늘 마음 속으로 동경해 왔던 화창하고 맑은 오후의 그 시간대가 캔버스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되살아난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작품은 옛 것에 대한 자그마한 향수를 자극하기도 하고 정적인 것들에 대한 새로움을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여기에 잘 정돈된 색채와 군더더기 하나 없는 구획의 변형은 차분하면서도 절제된 그녀의 감정을 조용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평면적으로 깔끔함을 강조하면서도 일상적인 평범함을 벗어나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까지 담고 있는 오후의 몽타주,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멋있지도 않지만 진정함이 느껴지는 아주 솔직한 작업이다.

“제 작업이 한가롭고 따스한 느낌이 있는 것 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황량한 듯한 느낌도 내포하고 있는 거 같아요. 제가 그리는 소도시의 풍경은 이 시대에서 주목 받지 못하는 것들이고 사라져 가는 것들 이거든요. 사실 이런 동네에 가면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앉아 계시는 분들은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잖아요. 시간이 많고 남겨진 자들 이겠죠. 인간 자체로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풍경의 하나로써 거기에 놓여져 있는 듯한 느낌이에요. 그래서 때로는 제 삶의 일부이지만 애증이 섞여 있는 거 같아요. 그리워하거나 동경하는 마음도 있지만 동시에 피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들거든요.”

그래서일까. 곧 사라질지도 모르는 풍경을 그린다는 것은 알 수 없는 미련을 동반한다. 그녀는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그렸던 ‘양평 터미널’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다음에 가봤더니 의자도 모두 새로 바뀌고 풍경이 전과 달라졌다면서. 급변하는 시대에 맞게 점점 바뀌어가는 터미널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어쩌면 그녀의 작업은 소도시에 대한 중요한 기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시대의 소도시에 대한 소박하면서도 애정이 가득 담긴 그런 기록.

오후의 몽타주 130.3 x 80.3cm oil on canvas 2006

#3
“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걸 좋아해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처럼 상당히 일상적인데 사람의 감정이 미묘하게 섞여 있는 거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거 같아요. 그런 것을 보면서 혼자 생각도 많이 하고요.”

그녀는 또 무엇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에 잠겨 있을까. 앞으로 그녀가 관찰한 오후의 조각들이 모이고 모여서 어떠한 몽타주로 그려지 게 될 지 궁금해진다. 그렇게 모인 오후들을 바라보면서 푸근하면서도 느긋한 시간을 다시 한 번 가져보고 싶다.

신리라는 어렸을 적부터 강원도에서 자라 현재 홍천에 거주하면서 작업 하고 있다. 올 봄,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가진 이후 워터게이트갤러리의 신인작가 발굴을 위한 ‘Bridge Project’ 공모에 당선되어 그룹전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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