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작가

작가 인터뷰

한은희
영원을 꿈꾸는 물빛 작가
2009.10.01

인터뷰 날짜 : 2008.10.17
인터뷰어 : 최희경
글 작성자 : 나비

한은희. 그녀는 뒤늦게 미술을 시작했다. 게다가 매일 작업하는 작가들과는 달리 일주일에 이틀 정도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살림을 해야 하는, 일명 ‘아줌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이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녀의 나이도, ‘아줌마’라는 사실도.그녀는 ‘물빛화가’로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깨끗하고 맑은 물빛과 함께 자욱한 안개를 기차게 표현해 낸다. 어디 그뿐인가. 산의 풍경을 담아낸 초록색 화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빠져들 수 밖에 없게 만든다. 한마디
로 그녀의 작품은 추상화 같은 산수화다. 자연에 홀린 듯한 색채를 화폭에 담아내면서 한은희, 그녀는 그림 안에서 ‘영원’을 꿈꾼다.

마음 134 x 68cm 한지, 수묵담채 2008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 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 김승옥 <무진기행>

무진. 그녀의 첫 번째 전시는 안개가 주를 이루었다. 비오는 날 혹은 새벽에 조용히 내려 앉은 자욱한 안개 말이다. 주위의 모든 풍경이 안개 속에 푹 파묻혔다. 사람도 뭔가 감추고 싶을 때가 있듯이 자연이 숨기고 있는 풍경을 안개 속에 아련하게 묻어 놓은 것이다. 어찌 보면 안개의 그 옅음, 그 희미함을 색으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 같지만 그녀는 오히려, 안개를 하도 많이 봐서 안개 도사가 됐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녀는 집 앞 풍경을 그리는 것을 시작으로 산수를 그리게 되었다고 한
다. 산수화에는 ‘허’의 개념으로 여백이 있지만 그녀의 산수화에는 풍경화적인 요소와 함께 안개의 아득함이 존재한다. 그러한 안개가 물빛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이제 ‘물빛화가’가 되었지만 물속에서 헤어나와야 하는지, 아직 물 속에 있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물에서 나오면 사람들에게 잊혀질까봐, 지금까지 고생한 것이 서서히 잊혀져 버릴까봐.

사람들은 줄곧 초록색이 지겹지도 않느냐고 묻는단다. 그녀 스스로도 지겨워 넌더리가 난다지만, 이제 ‘초록’은 그녀의 상징적인 색이 되어버렸다. 시골에서 자랐던 그녀는 초록이 온 천지를 뒤덮었던 아름다운 시절을 늘 기억하고 있다. 그 후 설악산으로, 지리산으로 오지를 찾아 다니며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화폭에 풀어 낸 것이다. 담담히 그리고 묵묵히. 초록도 초록 나름이지만, 그토록 살아있는 초록색을 표현해 내는 걸 보면 무언가 그녀만의 비밀이 있는 듯 하다.
그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색이 나오는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다. 물도 산도 어디 하나 인위적이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기를 뿜어내고 있다. 물론, 그녀가 이러한 색을 얻기까지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도 사실이다.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자신이 바라는 색이 나오는 마지막 단계까지 문질러도 보고, 닦아도 보고, 말려도 보고……. 끊임없는 ‘칠함’과 ‘말림’의 반복 끝에 탄생된 것이다. 깊은 초록도, 아련한 안개도, 투명한 물빛도. 모두 그렇게 속에서부터 우러나
온 것이다. 우연처럼 얻어진 듯한 그 모든 색들이 전부 그녀의 노력이었다. 그녀는 이러한 ‘욕심을 버린 인내의 과정’을 세상사와 맞물려 생각한다.

마음 134 x 72cm 한지, 수묵담채 2008

그리스어의 ‘없다’(u)와 ‘장소’(topia)의 합성어 유토피아.
어디에도 없지만 누구나 꿈꾸고 있는 이곳은 과연 어디일까?
서양의 유토피아가 ‘이상향’이라면 동양의 유토피아는 ‘영원성’이다. 영원성이 언제나 부여된다는 것은 진정 행복한 일이다. 모두가 살고 싶어 하면서 언제나 영원한 그 곳. 그녀는 그 행복을 자연에서 찾았다. 그녀가 찾아 다닌 자연에는 물이 흐르고, 생명력이 흐르고, 마음이 흐르고 있었다. 하나의 공간적인 개념인 골짜기, 골짜기 마다 모든 걸 채워 넣을 수 있는 힘의 에너지가 발산 되고 있었다. 그 안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소통하며,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던 것이다. 모든 생명력의 원천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자연. 그렇게 투명한 물빛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타인과 소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내보일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추구하는 ‘영원으로의 꿈’이다.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어야 한다.
거짓 하나 없는 그녀의 그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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