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작가

작가 인터뷰

김민경
위장된 자아 (Camouflaged selves)
2009.10.21

인터뷰 날짜 : 2009.07.30
인터뷰어 : 나비
글 작성자 : 나비

위장(僞裝, camouflage)
1 본래의 정체나 모습이 드러나지 않도록 거짓으로 꾸밈. 또는 그런 수단이나 방법.
2 적의 눈에 뜨이지 않게 병력, 장비, 시설 따위를 꾸미는 일.

일단 ‘위장’의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그러나 ‘위장’이라는 주제로 현대인들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 김민경의 작품에서 그 의미는 좀 더 다양하게 해석된다. 살면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역할’들을 소화해내고 있다. 사회적 위치와 나이에 맞는, 때와 장소에 맞는...때로는 슬프지만 웃고, 때로는 기쁘지만 울면서.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면서 겉모습 역시 시시각각 다르게 포장하는 것이 위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마디로 현대인들에게 ‘위장’이란 부정적인 것만이 아닌, 필수불가결한 그런 것이 되어버렸다.
김민경의 작품은 오늘은 이런 사람, 내일은 또 다른 사람으로 끊임없이 변신한다. 얼굴 하나에 여러 머리 모양의 이미지들은 위장을 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갈등과 아이러니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결국 김민경은 이렇게 위장하는 것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고, 그 표현이 곧 위장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이야기 한다. 마치 동전의 양면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말 그대로 감추고 위장하는 거예요. 저도 위장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위장하고 있죠. 모든 사람들이 살면서 100% 솔직하지 못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camouflage는 보호색을 띄거나 숨기는 듯한 이미지가 강한데 저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과장된 헤어스타일 등으로 화려하게 표현하면서 위장을 한 거죠. 우리가 개성을 표현한다고 하면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저는 그것이 더 거짓말 같은 거예요, 화장하고 꾸미는 모습이. 오히려 그 안에 무언가를 감추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보고 있는 것이 진짜일까, 아닐까 이런 질문에서부터 토끼 작업도, 위장 작업도 시작 된 거죠.”

위장단발머리2 각 70 x 80cm 람다프린트, 싸이텍, 합성수지 2009

그렇다면 ‘토끼 작업’부터 잠깐 이야기 해야겠다. 토끼 시리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 토끼’시리즈도 꽤 흥미로웠다. 토끼인지, 사람인지 애매모호한 이 생명체는 새초롬한 표정을 하고 당근을 들고 있는가 하면 유연한 자세로 요가를 하기도 하는 귀여운 입체작품들이었다. 그러나 한 4년 정도를 토끼 작업을 하면서 힘에 부치는 경우가 많았던 그녀는 작업을 조금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 하다고 느꼈고 이에 입체에서 평면으로 전환하게 된다. 토끼는 접어두고 아예 새로운 것을 생각하되 그 개념은 기존의 작업과 연장선상에 있는 그런 작업을 시도하고자 했다. 그동안 야외 전시를 많이 했지만 이제는 집안에 걸어 놓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해 보고자 고민하던 중 평면과 조화시킬 수 있는 입체로 ‘부조’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그녀의 토끼들은 ‘부조’의 형식을 빌어 실내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위장’시리즈는 이미지적인 면에 있어서 좀 더 밝고 경쾌해졌다. 눈동자가 없는 두상조각은 무서울 법도 한데 비비드한 컬러들로 인해 오히려 시선을 끌게 된다. 뿔 모양, 토끼 귀 모양을 하고 있는 머리뿐만 아니라 물결치는 듯한 머리카락, 구름이 흘러가는 듯한 머리카락들은 사실적인 이미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역동적으로 보여지고 그래서 더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다양한 헤어스타일과 색감들로 개성을 드러내 보이는 반면 똑같은 두상들을 나열하면서 대중화된 현대사회의 익명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감정을 최대한으로 절제한 차가운 얼굴을 만들기 위해 눈썹, 눈동자 등 세부적인 부분들은 모두 과감하게 삭제했다. (사실 빈 얼굴에 색칠하듯 실험적으로 그려 넣은 눈동자가 있는 작업도 있긴 하다.) 그녀가 만든 최종적인 얼굴에서 근육은 단순화 되었고 그 어떤 표정도 찾아볼 수 없다. 결국 얼굴 자체가 하나의 가면이 되면서 화려함을 가미한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위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Camouflaged selves_Ss1 각 30 x 40cm 람다프린트, 싸이텍, 합성수지 2009

어쩌면 ‘위장’은 좀 무거운 개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녀는 관객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았을 때 ‘위장’이라는 개념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미지적인 부분에서 더 호감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고 한다. 아직은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것에 더 의미를 두고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관객들의 생각도 그녀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뻗어나가는 머리카락처럼 점점 확장되었으면 한다. 시각적인 부분에 대한 관심이 개념적인 부분에 대한 관심으로.

“나의 예술은 나의 무한한 욕망을 표현함과 동시에 나를 감추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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