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 인터뷰 날짜 : 2009.07.13
  • 인터뷰어 : 나비
  • 글 작성자 : 나비
  • 얼마 전 친척을 방문하러 묵동에 간 적이 있다. 초행길인지라 골목, 골목마다의 모든 풍경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조용하면서도 한적한 동네의 분위기는 퍽 인상적이었고 대도시와는 사뭇 다른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불어왔던 시원한 밤바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낮은 주택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것도 좋았고, 상점이 많지 않은 것도 좋았으며, 그래서 더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해서 좋았다. 무엇보다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파트 9층에서 바라본 경치였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산줄기를 타고 푸르디 푸른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마치 녹색빛 산수화가 펄쳐져 있는 듯한 느낌. 봉화산(烽火山)이란다. 신내동과 묵동을 거쳐 중화동과 상봉동까지 이어진 독립 구릉으로 마을을 이어주고 있는 산이었다. 산 사이에 산재해 있는 아파트와 주택가는 바람이 일고 있는 숲의 살랑거림 속에서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 그 녹색의 흐드러진 풍경 안에 파묻힌 집들을 바라보면서 문득, 김윤희의 작품이 생각났다.




    부암동332  194 x 98cm  장지에 먹, 아크릴릭  2008

    김윤희, 그녀는 ‘자연’과 ‘마을’ 풍경에 주목한다. 스케치 여행에서부터 비롯된 이러한 작업은 그녀의 관찰력과 부지런함을 대변해 준다.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기 위해 수시로 떠났던 스케치 여행은 이미지로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안목과 깊이를 길러주었다. 그로 인해 그녀의 작품에는 자연을 바라보는 동양적인 관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전국을 발로 누비며 만났던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된 그녀는 자연과 마을이 어우러진 현장을 화폭에 담았다. 그것은 상반된 풍경이면서도 조화로운 풍경이다. 원래부터 그러했던 자연과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마을들, 그리하여 자연 안에 파묻힌 집들, 그 속 어딘가에 김윤희도 우리도 파묻혀 있지 않을까.
    자연이라는 이미지에 매력을 느껴 시작했던 작업이 점점 마을로 옮겨지면서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이동해 왔다. 처음에는 자연의 거대함을 그리려고 했었고, 마을은 그런 거대함 속에 있는 사람들의 작은 흔적이라고 생각했던 김윤희는 이미지의 흔적을 쫓게 되면서 마을, 동네, 골목 등에 주목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점점 자신과 가까운 주변 풍경에 눈이 가게 되었던 것.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인간에 의해 생겨난 마을의 이미지적인 대비를 보여주려고 했던 그녀의 작업에서,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의 대비는 자연은 먹으로, 집은 아크릴로 표현함으로써 매체의 대비로도 나타난다.

    그렇다면 김윤희가 그리고 있는 마을들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림만 보고서는 상상의 마을일거라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작품의 제목이 모든 걸 말해준다. 여기가 어디인지, 어느 동네인지. 부암동 시리즈 같은 경우만 해도 그렇다. 그녀는 번지수까지 꼼꼼하게 적어주면서 특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관조하면서 그 마을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을 찾고 있었는데 서울 인근에 그런 풍경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 부암동이었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이름을 가지고 있듯 그녀에게는 동네의 번지수도 중요하고 골목마다의 이름도 참 소중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 역시 그림만 보고서는 실재하는 동네인지 ‘꼭’ 물어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존의 동네든, 상상의 동네든 상관없다.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녀가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그렸으니까, 그녀의 마음을 담아서 그렸으니까,
    얼마나 소중했으면 이리도 따뜻하게 그려냈을까. 레고 블록을 쌓아 놓은 듯 톡톡 붙어 있는 집들은 마냥 귀엽기만 하다. 어디 그뿐인가. 어여쁜 색상의 옷을 입고 둥둥 떠나는 집들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자연 안에서 잠을 자고 있는 집들… 자연스러우면서도 환상적인 풍경이 그렇게 하나가 되어 가는 모습이 바로 그녀가 직접 찾아낸 보물들이리라.




    정선가수리  172 x 86cm  장지에 먹, 아크릴릭  2008

    김윤희, 그녀의 작업에 들어있는 ‘자연’과 ‘마을’이라는 두 개의 우주는 앞으로 어떻게 펄쳐질까. 그녀는 소망한다. 비슷한 골목 풍경 안에서도 동네마다의 독특한 특징을 찾아 내서 그리기를. 거칠지만 웅장해 보이는 대자연을 보다 더 깊이 있게 그리기를. 정선이 진경산수를 그렸던 것처럼. 그 독자적인 특징을 살려 조선의 산수 풍경을 그렸던 것처럼…
    그녀가 말하길, 회화의 진정성은 화가의 손끝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마음을 담아 그리는 진실한 정신이 있었기에 회화는 영원했다고. 현세의 풍파 속에서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그리되 얼마나 오래 그리는지도, 끝까지 그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마음가짐은 꼭 이러한 문구를 떠올리게 만든다. last man standing
    !
공유하기

MYA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