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작가

작가 인터뷰

이은희
가벼운 중독
2009.10.19

인터뷰 날짜 : 2009.07.13
인터뷰어 : 나비
글 작성자 : 나비

‘캐리’ 없이 ‘Sex and the City’를 논할 수 없지만, ‘신발’ 없이도 캐리를 논할 수 없다. 집 렌트비가 없어 전전 긍긍 하면서도 옷장 안에는 값비싼 명품 신발들이 한 가득인 그녀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명품.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인가, 자본주의가 낳은 허황된 꿈인가. 하지만 이것이 과연 ‘캐리’ 뿐만일까.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물질적인 욕망은 끝이 없다. 물질문명과 소비문화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그것을 선호하는 인간의 욕망은 참 아이러니하다. 명품 앞에서 인간의 심리는 이렇게 두 갈래로 나뉜다. 이은희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가벼운 중독’이라 여겼다.

가벼운 중독-시선 194 x 100cm 장지에 채색, 금분 2008

“명품을 좋아하나요, 아니면 싫어하나요?”
아무래도 ‘명품’을 주제로 작업을 하다 보니 이러한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녀의 대답은 ‘Yes’ 혹은 ‘No’가 아니다.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의 이중적인 심리가 재미있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 역시 부정적인 시선으로 출발하긴 했지만 지금은 하나의 사회적인 흐름으로 간주하고 개인적인 취향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한다.

명품에 대한 사람들의 이중 심리를 동물로 의인화하여 보여주고 있는 이은희. 그녀의 작품에는 ‘이미지화’ 된 동물들과 함께 ‘로고화’ 된 유명 명품 브랜드들이 등장한다. 그녀의 화판을 보고 있으면 검은색으로 표현된 동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치 동물이 거대한 정글 숲 사이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강렬하게 다가온다. 잉어나 공작새처럼 화려하게 표현된 동물들이 있는가 하면 돼끼(돼지와 토끼), 고슴이(고양이와 사슴) 등 변종된 형태의 동물들도 등장한다. 원색 바탕에 놓여진 동물들의 묵직한 느낌은 검은색으로 수십 번 칠해 올린 결과물인데 이 때문에 동물들의 형태적인 요소에 더욱 집중하는 효과를 낳았다.
명품은 사람이 하는데 왜 동물이 등장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는 소비를 지향하는 인간의 사회적인 단면을 동물로 의인화하여 제시함으로써 ‘우화’라는 장르를 끌어들인 것이다.
그러나 우화를 차용하긴 했지만 ‘우화’가 지닌 속성 그대로 풍자나 교훈적인 의도가 아니라 단순히 ‘우화’의 기본적인 틀만 이용한 것이다. 그녀는 본능에 충실하고 순수한 동물을 통해, 인간의 욕망에 대한 현시대적 이미지를 제 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하였다. 또한 여러 동물들을 재조합 하여 해학적으로 표현하면서 사치의 욕망에 빠진 현대인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었다. 명품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 다양하듯 여러 동물들의 형태적인 변화는 소비사회와 그 안에서 겪게 되는 개인적 갈등과 번뇌에 대한 그녀만의 회화적인 표현인 것이다.

이은희의 작품에서 화려하면서도 여성스러움이 느껴지는 장식성은 중요한 조형 요소로 자리잡았다. 그녀는 큐빅, 반짝이, 금분, 은분 등을 이용하여 명품의 로고를 세심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큐빅의 그 작은 조각 하나, 하나까지 손수 작업하는 정성스러움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장식적인 효과는 단순히 시각적인 충족만을 위한 표현 방법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 또한 내포하고 있는 조형 요소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를 뒷받침하는 조형적인 개념의 정립을 위해 ‘부조화를 통한 조화’, ‘불균형을 통한 균형’, ‘역동적 형식을 통한 감성적 표현’을 보여 주고 있다고 말한다. 고품격 패션지의 화보를 보듯이 명품 브랜드의 로고를 있는 그대로 노출시키는 직설적인 방법에 단순화 된 동물을 은유의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다. 결국 평면적 요소와 장식적 요소를 동시에 결합시키면서 단순한 이미지 속에 화려함을 더하여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다.

나는 고슴이 입니다. 72 x 91cm 장지에 채색, 큐빅 2008

최근 그녀는 명품 로고를 빼고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직접적인 방법으로 표현했던 것들을 삭제하되 지금까지 해왔던 분위기와 느낌은 그대로 이어가고 싶다는 욕심이다. 또한 지금까지는 관객들이 동물을 너무 예쁘게만 인식하는 것 같아서 조금 더 기괴하게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 이 어여쁜 동물들의 이미지는 어떻게 변형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방황을 하고 헤매더라도 그 안에서 답을 찾게 되는 것이 예술인 걸까. 이은희는 예술은 하나의 ‘출구’라고 이야기하면서 작업을 위해 몰입하는 그 모든 시간들을 출구를 찾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여기고 있는 듯 했다. 매순간,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예술 안에서, 그녀의 그림 안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나의 예술은 출구다.
그림은 관람객이 어떻게 봤느냐도 중요하지만 내가 그리는 순간도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몰입하는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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