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작가

작가 인터뷰

채경
엑스레이 유희
2009.10.19

인터뷰 날짜 : 2009.07.10
인터뷰어 : 나비
글 작성자 : 나비

「오늘 일식 보셨어요?
앞방 태국작가가 자기 찍은 엑스레이 필름까지 꺼내서 함께 보았어요.
으아으아 굉장했어요. 신나요 흐흐.」

물론 보았다. 다음 개기일식은 2035년에 있다는 말에 놓치면 안되겠다 싶어 냉큼 옥상으로 올라가 역사적인 우주의 순간을 기념했다. 나에게는 첫 경험이었기에, 그 신비로움이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놀라움과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옥상에서 내려와 메일함을 열어보니 그녀로부터 메일이 와 있었다. 이 얼마나 적절한 타이밍인가. 메일에서부터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분명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면서 폴짝 폴짝 뛰며 좋아했겠지. ‘일식’과 ‘곤계란’의 타이밍도 만만치 않았다. 최근 그녀의 작업은 탄생과 소멸에 관한 주제 아래 곤계란을 촬영하여 새로운 우주의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다. 안 그래도 요즘 별자리와 행성들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던데, 그런 와중에 벌어진(?) ‘일식’의 장관은 그녀에게 분명 더 새롭게 다가왔으리라. 얼마 전 고양 미술 창작 스튜디오에서 그녀의 ‘곤계란 시리즈’를 보고 온 터라, 오늘의 ‘일식’이 나에게도 더 환상적으로 와 닿았다. 메일을 보면서 다시금 그녀의 ‘곤계란’ 속 우주를 바라보았다. 나도 궁금하다. ‘작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원안에 앉아있는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라던 그녀의 물음이.

Leica 40 x 100cm digital print on Korean paper 2006

말이 나온 김에 곤계란 작업부터 이야기해야겠다.
곤계란. 영양이 풍부하여 건강식으로 알려진 반 부화 달걀. 태어나기 직전의 병아리를 삶아먹는 다는 것은 조금 끔찍하지만 그녀의 작품 안에서는 왜이리 아름답고 신비로워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X-ray를 이용하여 얇은 껍질 안에서 한껏 몸을 웅크리고 있는 생명체들의 자화상을 담아냈다. 한 마리 한 마리의 디테일한 모습은 마치 ‘태아’의 모습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아무것도 없는 점에서 시작되지만, 그래서 처음엔 아무 형태도 알아볼 수 없지만 무언가 끊임없이 생성되면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 인간의 탄생과도 너무 닮아있다. 하지만 태어나기 전부터 죽음이 예견된 이 작은 병아리들의 그 짧은 生의 과정을 생각해보면 기분이 썩 편하지만은 않다. 그녀 역시 촬영을 하면서도 내내 마음이 불편했고 어두웠다고 한다. 어릴 적, 시장에서 털과 부리가 있는 곤계란을 먹던 어른들을 보고 크게 놀랬던 그 시절의 충격적인 기억은 훗날, 창조와 소멸을 거듭하는 밤하늘로 되살아났다. 그렇게 곤계란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우주의 경이로움과 맞닿아 있었다.

곤계란 이전의 작업 역시 X-ray를 이용한 것으로,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자기기들을 소재로 한 독특한 수묵화시리즈이다. 외로이 서 있는 헤어드라이어 나무, 독수리가 낚아 챈 것은 다름 아닌 마우스, 달빛아래 부엉이와 함께 고즈넉한 밤을 지새고 있는 핸드폰… 그녀는 사물의 내면을 흑백으로 볼 수 있는 X-ray의 특성이 자연의 내적인 본질을 표현하는 동양화와 흡사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사진’이라는 한정적인 장르에서 벗어나 사진과 동양화, 예술과 과학이라는 상반되는 것들을 오묘하게 결합시켰다. ‘오리엔탈 엑스레이’라는 이름으로 수묵화에 바탕을 둔 이 작업은 한지에 디지털 프린트 방식으로 여백 안에 낙관을 찍고, 족자 형태의 전통적인 방법을 택했다. 이로써 더욱 동양화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되었고 그녀가 추구하는 예술의 ‘유희’를 맘껏 보여주었다.
그녀가 이러한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몇 년 전 스튜디오에서 일을 하다 허리를 다쳐 X-ray를 찍게 되면서부터다. 자신의 X-ray 사진을 보면서 흑백으로 되어 있는 것이 마치 먹의 농담으로 빚어지는 수묵화와 비슷하다고 생각 해서 작업을 시작했다. 아주대 영상의학과 교수의 배려로 아주대병원에서 몇 개월 동안 촬영 기법을 배우면서 진행된 이 작업은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수묵화로 탄생하여 즐거움을 선사했다. 전화위복, 그때의 ‘사고’는 오히려 득이 된 셈이다.

Red226 90 x 90cm wide color and light panel 2009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그녀 스스로도 ‘엑스레이’작업을 계속 할 것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한다. 작업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딜레마이긴 하지만 아직은 엑스레이로 보여주고 싶고, 하고 싶은 시리즈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일단 계획한 것들은 엑스레이로 계속 풀어나가되 그 이후에는 조금씩 변화를 추구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고양 미술창작 스튜디오 입주 작가로 선정된 그녀는 고양에 있을 동안 좋은 작업을 많이 하면서 작품 하나 하나에 더 무게를 두고 좀 더 정성 들여 완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녀는 현재 에디션을 없애고 한 점씩 작품을 만들면서 회화와 같은 원리로 작품성에 더 치중하고 있다. 사진의 장점인 복수성(물론 단점이기도 하지만)은 앞으로 그녀의 사진에서는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사실 그녀는 여행을 좋아하고, 사색을 좋아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국문학도였다. 그러나 혼자서 동남아로 떠났던 여행이 화근(?)이 되어 지금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는 그 심정, 간절히 원했던 그 심정이 오늘을 있게 만들었다. 전공을 바꾸면서까지 빠져들게 되었던 사진의 매력, 도대체 그 매력이 무엇이었냐고 했을 때 그녀는 길게 답하지 못했다. 그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는 말 밖에는. 맞는 것 같다. 누군가가 왜 좋은지 이유를 물었을 때 쉽게 정의 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을 때면 밝게 웃는다는 것도 주위 사람들이 말해줘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도 모르는 사이 궁합은 그렇게 잘 맞고 있었나 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웃고 있겠지. 그녀의 동반자, 카메라와 함께.

“나의 예술은 ‘유희’다. 이게 참 공격을 많이 받은 이야기이기는 한데요, 나의 예술은, 항상 하는 말인데 ‘유희’다. 우선 제가 너무 즐거워요. 촬영을 하고, 작업을 하고, 전시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 즐거워요. 예전 전시 때 어떤 분이 방명록에 ‘부엉이 앞에서 피식 웃어버렸다’고 쓰신 게 있어요. 그거 보고 이 전시는 성공했다고 생각했거든요. 한 분은 확실히 즐겁게 해드렸으니까. 그렇게 계속 하는 것이 제 바램이에요.”

MYA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