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작가

작가 인터뷰

조영철
외로운 도시에서 낭만을 조각하다.
2009.10.13

인터뷰 날짜 : 2009.07.03
인터뷰어 : 나비
글 작성자 : 나비

도시. 과연 여기는 살아있는 공간일까, 죽어있는 공간일까.
도시의 형성은 인구가 밀집되는 구조를 낳았지만 우리는 서로 더 멀어졌다. 우리의 삶은 편리해졌지만 감성은 건조해지고 대화는 사라졌다. 그렇게 도시 안에서 고립되고만 우리, 만성적인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겐 여행이 필요하다. 이용수단을 이용한 메커니즘의 진보가 아닌 사고의 진보를 이루는 여행. 단순히 공간적인 이동만이 아닌 새로운 삶을 탐구하는 사유의 여행.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지의 생명체가 아닌 바로 내 옆의 그 누군가와 소통하는 여행… 살아있기 위해서 지금 우리는, 잠시 문명을 떠나야 한다.

기억을 쫓는 늑대2 5.8x15x9.5m Steel 2008

그래서 조영철은 잠시 문명을 등지고 몽골로 떠났다. 컬쳐 나담 미술 프로젝트 ‘Horse, my friend - Homeland of horses’를 위해서. 동물을 소재 삼아 ‘이동’과 ‘소통’에 관한 테마로 작업하는 그에게, 몽골 현지에서 한달 동안 생활하며 진행했던 이 미술 프로젝트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몽골어로 ‘게임’, ‘놀이’를 뜻하는 ‘나담’은 씨름, 경마, 활쏘기로 이루어지는 몽골의 전통 축제이다. 그러나 컬쳐 나담 미술 프로젝트는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행사에서 벗어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친근한 예술작품을 바탕으로 ‘말(話)’이 아닌 ‘말(馬)’로써 소통하고자 했다. 몽골은 굉장히 보수적인 나라로 자신들의 것, 특히 ‘말’에 대한 자긍심과 애착이 굉장히 크다. 몽골인들은 말 젖으로 술과 치즈를 만들어 먹고, 말의 꼬리로 마두금이라는 현악기를 만들어 연주하기도 하는 등 그들에게 있어서 말은, 어머니이자 동반자 같은 존재이다. 무엇보다도 몇 천 년간 이동수단의 핵심 역할을 했던 유목생활을 비롯하여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역사적인 동물이다. 생활의 일부이면서 전부이기도 한 ‘말’은 몽골인들에게는 단순한 ‘짐승’ 자체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 그가 목이 긴 말을 만들었을 때 이것은 우리나라 말이 아니라면서 배타적인 감정을 보였다는 몽골인들의 냉담한 반응도 이해할 만 하다. 그들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 이유로 초반에 어려움이 많았다지만 몽골국립예술대학의 학생 지원자들과 공동으로 작업하면서 작품의 일부는 관람객이 완성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그 역시 느낀 바가 많았으리라. 산업사회에서 사라져버린 유목민적 기질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현대의 유목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이 프로젝트를 그는 이렇게 간직하고 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더라도 예술이라는 공통된 코드로 교감을 할 수 있었던 좋은 작업이었다고.

그가 동물 형상으로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이동’과 ‘소통’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시작했던 거리 전시에서부터다. 거리 전시를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기 위한 형태가 필요했고 이에, 그의 얼굴을 떠서 축소시킨 ‘로맨틱 몽키’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거리로 나섰다. 사람들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그의 분신을 보고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신기한 듯 쳐다보고, 어깨동무도 하고, 함께 사진도 찍으면서. 이렇게 작품이 이동 하면서 생긴 해프닝들을 사진으로 포착한 그는, 그것들을 다시 갤러리에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과 교감 하고자 했다. 전시장이 아닌 지하철, 버스, 길거리 등 오픈 된 공간에서 펼쳐진 이 프로젝트는 일종의 게릴라적인 성격을 띤 그만의 대화 방법이었던 셈이다. 도시라는 단절된 구조 안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과 생태학적인 인간으로서의 속성들이 궁금해서 시작되었다는 이 작업 이후, 그의 작업 소재는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동물 형상으로 자리잡았다.

구름을 기억하는 말, 기억을 쫓는 늑대, 낭만을 좋아하는 숫사슴…
얼핏 이름만 들어서는 감성적인 동물들일 것 같지만 그가 창조한 동물들은 마치 하나의 건축물을 보는 것처럼 짜임새 있고 견고하다. 동물들의 골격과 구조만 보더라도 상당히 치밀한 준비 작업이 있을 것만 같은데 오히려 대답은 간단했다. 그저 스케치를 많이 한다는 것. 그는 더 많은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야외 전시를 선호한다. 그가 환경적인 외부 요인을 극복하기 위해 이토록 크게, 그리고 튼튼하게 작업하는 이유도 이 같은 맥락으로 간주된다. 그는 완성된 작품들을 바다, 도시 등의 특정한 장소에 설치 한 후, 사진으로 기록하여 독특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사슴이 언덕 위에서 노을 지는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거나 말들이 진로 모색을 위해 바다 가운데 멈춰 서 있거나 하는 장면들 말이다. 그의 동물들은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갤러리로 돌아온다. 정지하고 있는 듯 하지만 알고 보면 끊임없이 문명세계를 이동하고 돌아온 그의 동물들이야 말로 노마드적인 습성을 실현한 작품들인 것이다.

도시를 위한 네발짐승 각 0.9x2.4x2.8m Polycarbonate, Stainless steel 2008

조각가인 그에게 작품의 완성도가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작업 전의 자료조사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요즘은 준비과정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고 하는데, 동물들의 습성을 알기 위해 동물원을 찾아다니는 것은 기본! 문헌조사는 물론이며, 관련 다큐도 많이 본다고 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계획적으로 진행하는 것 외에 즉흥적으로 작업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는 보통 드로잉을 잘 하지 않고 허공에 그린다고 한다. 종이와 맞닿는 순간과는 다른 매력이라면서. 대기 중에 떠다니던 선들이 가시적인 동물로 탄생하는 과정을 상상해보니 그의 조각적인 메타포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는 오늘도 이 외로운 도시 안에서 낭만을 조각하고 있을 것만 같다. 그를 외로움을 덜어주는 반려동물, 고양이 나비와 함께…

“노력하는 만큼 좋은 전시를 연출하고 싶어요. 제 작품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가다 보면 제 작품을 기억해주시는 분들도 있고 조언을 해 주시는 분들이 있을 거예요. 전시가 끝나면 전시장에서 만났던 분들이 메일로 조언 해줄 때 힘이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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