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작가

작가 인터뷰

이보람
본다는 것의 의미
2009.10.06

인터뷰 날짜 : 2009.06.26
인터뷰어 : 나비
글 작성자 : 나비

얼마 전, 시위 도중 정부군의 총격에 의해 사망한 이란 소녀의 동영상은 전세계를 충격에 몰아 넣었다. 픽션이 아닌 실재의 상황을, 그것도 이토록 처참한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독’이 되어버린 듯한 각종 대중매체를 통해 전쟁에 관한 이미지들을 너무나 손쉽게 볼 수 있는 우리의 현실이 서글프기만하다. 더욱이 보도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정, 삭제, 편집들은 사건의 진정한 이면이나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하는 데 혼란을 주고, 결국 표면적인 것만 보게 되는 대중은 수동적으로 반응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는 식상한 용어처럼 느껴지는 미디어의 ‘범람과 ‘홍수’는 인간의 잔인함을 일상의 영역으로까지 끌어들였고 이러한 비극적인 일상에서 우리에게 남은 것이라곤 무뎌진 감각뿐이다.

희생자-descending 97 x 130cm oil and acrylic on canvas 2009

사진이라는 매체를 다시 평면으로 재현하는 작가 이보람의 작품 소재는 전쟁과 관련된 보도사진들이다. 작가는 “전쟁보도사진의 소비가 죄의식의 소비로 전환되는 상황, 그 속에 담긴 희생자들의 이미지가 구체적인 현실에 관한 것이 되지 못한 채, 추상화되고 고통의 은유로서 존재하게 되는 상황”이 작업의 전제라고 말하며 희생자들에게 주목한다. 상처 입은 사람들, 울부짖는 사람들, 고통을 드러내는 사람들…… 그러나 전쟁의 사실적이고 생생한 이미지가 아닌 눈, 코, 입이 생략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얼굴을 알아보기 힘든 희생자들은 사진에서나 그림에서나 하나같이 무기력해 보인다.

작가만의 방식대로 편집하고 재구성한 이러한 작업은 이라크전쟁에서부터 출발했다. 2003년을 기억해보자. 우리는 밤낮으로 전쟁의 참상을 볼 수 있었다. ‘이라크전쟁’이라는 검색어로 무수한 이미지가 쏟아지던 당시, 희생자들의 클로즈업 된 사진들을 보면서 작가는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스크롤을 내리면서 간단히 보고 지나가는 것이 마치 온라인으로 상품을 검색하고 가볍게 지나치는 듯한 느낌에 ‘이것이 ‘과연 보는 사람 입장에서 옳은 일인가’하는 의구심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요즘처럼 이미지를 수용하기 힘든 세상에, 그 누구도 이런 잔혹한 이미지 앞에 고민한다거나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진지함’이란 크게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사진들을 ‘본다’는 것은 곧 가볍게 잊혀지고 마는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그 어떤 ‘의식’없이 ‘본다’라는 행위로만 쉽게 지나쳐 버리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사전 작업 역시 ‘보는’ 것 이다. 전쟁과 테러에 관련된 사진들을 보는 일. 그렇게 인터넷에서 사진 이미지를 찾다 보면 정형화된 틀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보도사진의 캡션들이 하나같이 ‘오열하는’, ‘고통스러워 하는’ 등의 획일화 된 형용사들이고 작가 역시 통상적인 이 단어들을 그대로 작품의 캡션으로 사용 한다.

최근 작업은 ‘작업실에서’ 시리즈다. 보도사진의 희생자들을 그리는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들(프린트된 사진들, 절단된 신체를 대신한 인형머리와 조각들)을 이용하여 그 공간에서 느낀 작가의 심리와 생각들을 압축하여 표현하고 있다. 작업에 주로 등장하는 미술품 도구들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써의 자화상적인 의미가 강하게 느껴진다. 사람의 피부처럼 느껴지는 덩어리들 사이로 희생자들이 피를 흘리고 있으면 붓에도, 팔레트에도 똑 같은 색이 뭍어 있다. 마치 작가 스스로가 희생자들에게 또 한 번 상처를 낸 것처럼. 이렇듯 작업과정에서 쓰이는 재료나 도구들이 또 다른 의미들을 만들어내면서, 작업 현장이 다시 작품이 되는 일련의 과정들은 참 흥미롭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전쟁과 관련된 사진을 다루면서 당시의 상황을 직잠하게 하는 리얼한 색감은 거의 들어가 있지 않다. 슬프고 잔인한 현실을 오히려 파스텔 톤으로 차분하게 가라앉혀 놓았다. 너무나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상업적인 색, 감정이 담겨있는 듯 따뜻해 보이지만 사실은 텅 비어있는 색, 분홍색. 실제로 이러한 이미지들이 소비되는 상황이 분홍색의 가벼움처럼 쉽게 소비되고 빨리 잊혀진다. 분홍색은 현대인들이 지니고 있는 가벼운 죄의식과 닮아있다. 결국 이 핑크 빛 아이러니
는 그러한 이미지들이 현실에서 갖는 무게감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또한 작가는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인형 머리들이 희생자가 아닌 대중의 이미지라고 설명한다. 파란색 물감으로 두 눈이 가려진 채 무감각하게 바라보고 있는 똑같은 인형들이 바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분홍과 빨강, 피흘리는 73 x 60.5cm oil and acrylic on canvas 2009

작가는 평소 작업을 하지 않을 때 미국드라마를 자주 본다고 한다. 특히 범죄 수사물을 많이 보곤 하는데 시체를 더 시체처럼 잘 만드는 미국의 기술력에 항상 놀라게 된다고 한다. 영상매체의 이미지들이 작업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해부하는 장면들이 나올 때 마다 시체가 사람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물건, 혹은 고기덩어리처럼 보인다면서 걱정을 한다. 창작을 위한 수단이겠지만 범죄드라마와 전쟁사진들을 자주 보게 되니 감성이 메마르고 우울해지는 것 같다는 말이 괜한 얘기가 아니었다. 결국 이보람의 작업은 창조의 기쁨이 아닌, 죄의식으로 가득한 불편함 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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