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작가

작가 인터뷰

고영미
사는 것은 전쟁이다
2009.10.04

인터뷰 날짜 : 2009.06.23
인터뷰어 : 나비
글 작성자 : 나비

‘친절한’ 금자씨를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더 이상 ‘친절’은 없고 잔인한 복수만 남도록.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서…
금자씨는 백선생을 죽이기 위해 총을 구한다. 평범한 권총은 절대 안 된다. ‘예쁜’ 총이어야 한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이것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다고 아름답고 예쁜, 그런 총을 찾는 것 일까. 하지만 그녀는 알 것 같다고 했다.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내가,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Ⅱ_180x120cm_한지꼴라쥬위에 채색, 프라모델설치_2006

전쟁 같은 현실을 동화적으로 표현하는 작가, 고영미.
지금까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겨울에서 슬픔을 보다>, <인생은 아름다워> 등 세 번의 개인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만의 독특한 방식을 선보여왔다. 사회적인 사건과 자신의 경험이 뒤섞인 복잡한 심리가 그림으로 이어졌고 현실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그렇게 불편하게 출발했다. 그녀가 이러한 작업을 시작할 때쯤, 이라크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가 떠들썩 했다. 전쟁의 처참한 상황을 폭로하는 수많은 보도를 통해 힘없는 자에 대한 사회의 폭력성을 지켜보면서 ‘전쟁’이라는 이미지가 굉장히 크게 와 닿았다고 한다. 당시 우울했던 감정들이 희생자들의 상황과 동화되면서 그녀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사회적 약자, 소외된 사람들에게로 흘러들었다.
(그녀는 지금도 ‘눈 뜨고 하는 일’이 뉴스 보는 것이라고 한다. 밤새 또 어떤 일들이 있었나… 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참혹한 사건들, 약자는 계속 약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사회적인 모순, 동물들의 세계 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도 극명하게 존재하는 약육강식의 법칙… 이처럼 어릴 적 꿈꿔 왔던 거대하고 화려했던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염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고, 전형적인 동양화처럼 우아하고, 운치 있는 것이 아닌 내면을 표출하는 작업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녀는 은유와 상징을 곳곳에 뿌려 놓음으로써 우리가 처절하게 생존하고 있는 모습을 동화적인 현실로 우회하여 보여주었다. 그녀의 작품은 화려하면서도 강렬한 색감들이 시선을 사로잡지만 그 안에 담긴 비극적인 이야기를 읽어 갈수록 우리의 슬픈 자화상을 발견하고 공감하게 된다. 결국 작품 속에 등장했던 나체의 여자는 그녀 자신이기도 했지만 우리 자신이기도 한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누가 힘든 일이 없겠으랴. 누구나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표출하지 않았던 것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 혹은 알면서도 간과 했던 그 모든 상처와 아픔들을 그녀의 그림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개인적인 감정을 그려냈지만 그것이 누구나 공감하는 사회적인 발언으로 이어지면서 소통의 경지를 한 단계 더 넓혀 놓았다.

그녀는 평면작업에만 머물지 않고 영상과 설치작업을 통해 다양한 표현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한가지로 국한되기 보다는 여러 가지 매체들을 활용하여 평면에서 얼마나 더 조화롭게 표현할지가 그녀의 과제이다. 평면에서도 그러하듯 영상과 설치 작업에서도 미사일과 전투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제는 전투기를 보면 어떤 모델인지 알 정도로 도가 텄다고 한다. 그만큼 자료도 무수히 많이 찾아보고, 적합한 프라모델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헤매었으리라 짐작된다. 프라모델을 만들고 영상
까지 제작하면서 처음에 의도했던 이미지랑 다르게 나올 때가 많아 힘들긴 하지만 더 나은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실험적으로 이런 작업들을 꾸준히 진행해 보겠다고 한다.

한 여름밤의 꿈Ⅰ 112 x 145.5cm 한지꼴라쥬 위에 채색 2008

그림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던가. 이런 그림들이 탄생하기까지 그녀 스스로도 내면적인 방황이 많았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겠지만 그녀는 힘들수록 그림 안에서 자신을 더욱 괴롭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로 인해 또 해소가 된다고 하니 어쩌면 이것은 그녀만의 치유법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예쁘고 순수한 것들만 존재 하지 않듯이 아름답고 깨끗한 모습만 그리는 게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그 틈 사이에는 더럽고 추악한 것들이 무수히 많이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그리는 것도 결국은 가려진 것들을 다시 드러내면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그려내고 싶다는 그녀의 마음 속 거울 때문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첫 번째 개인전으로 돌아오자. 첫 번째 개인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이후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사회 분위기는 뒤숭숭하고 혼란스럽다. 이러한 전쟁 같은 현실 속에서 예술가로써 고영미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니까, 제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제 작품을 통해서 사람들이 공감을 얻고, 다른 생각을 하거나, 무언가 깨닫는 것은 고마운 일이니까요. 처음에는 저도 비판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비판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한테, 세상한테, 그 이후에 갈 길을 묻고 싶고, 그 길을 잘 찾아보자고 이야기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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