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작가

작가 인터뷰

조장은
그림일기 그리는 화가
2009.10.04

인터뷰 날짜 : 2009.06.11
인터뷰어 : 박태용
글 작성자 : 박태용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난 화가 조장은은 서울예술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한 눈에 보기에 상큼, 발랄, 야무진 숙녀처럼 보이는 그녀는 2007년 <색시한 그림일기>, 2008년 <골 때리는 스물다섯>, 2009년 <센티멘탈도 하루이틀> 3회의 개인전을 치룬 젊은 여성 한국화 작가다. 재기발랄한 제목이 말해주듯 그녀는 그림일기라는 형식을 빌려 그림 속에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감각적이고 강렬한 색채, 유머러스한 글귀가 함께하는 그녀의 그림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삶이 담겨있다.

품안의 자식 50 x 50cm 장지에 채색 2009

어린 시절부터 그림일기를 너무 좋아했고 꽃다운 아가씨가 되어서도 크레파스를 놓지 않고 있는 20대 화가 조장은의 이야기는 청춘의 한 복판에 있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음직한 연애 문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겪는 좌절, 그리고 소소한 삶의 조각들로 채워져 있다. 그녀는 매일 일기 쓰듯이, 혹은 혼자 기도하듯이, 자신과 대화하듯이 그림을 그린다. 살다보면 좋은 날도 있고 슬픈 날도 있는데 그날그날 겪는 감정이 다 소중하고, 현재의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미래가 다가오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때문에 지금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을 모아서 시간이 흐른 뒤 추억하고 싶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은 특별히 자신의 모습이 담긴 자화상이 주를 이룬다. 저 멀리 다른 세계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그녀는 동양화의 정신을 중요하게 여겼다. 보이는 대상 자체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내면의 세계, 그 사람의 심리나 사상까지도 그리는 동양화의 전신(傳神)사조에 충실한 것이다. 작가가 가장 사랑하고 잘 아는 스스로를 모델로 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한껏 들려주고 있다. 자신의 삶이 곧 작품 세계가 되는 것이다.
작가의 작업 과정은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 표현이며 자기 성찰의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의 결과로 만들어진 작품은 솔직함을 넘어 물아일체의 진정성이 있기 때문에 감상자들은 작품 속의 이야기를 보면서 마치 거울을 보는 듯 자기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서 바라보게 된다. 결국 그녀의 그림은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담았지만 솔직한 감정과 진심이 담긴 표현을 통해 이 시대 젊은이들의 보편적 감성을 건드리면서 소통하며,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이런 작업의 어려운 점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예쁘고 아름다운 대상을 그리는 미술작품보다 덜 팔린다는 농담 반 진심을
말한다. 작가는 자신을 과장하거나 미화시키지 않았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기 자신, 조금도 예쁜 척하지 않고 망가지는 일상의 모습들 까지도 그대로 표현한다. 자신의 사랑스러운 모습, 불만스러운 모습, 부끄러운 모습까지도 꼼꼼히 관찰하고 포착해서 그림으로 담아낸다. 그런 솔직함과 자신감은 그녀의 선천적인 성격이다. 자신의 그림을 그림일기라고 명명하는 그녀의 작품은 글과 그림이 함께 구성되어 이루어진다. 특히 그녀의 작품에서 글귀는 곧 작품 제목이며,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이런 형식은 어린 시절 모두가 그렸던 그림일기의 경험과 우리의 옛 그림에서 그림과 더불어 제발이 가지는 내용적 측면과 조형적 아름다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밧데리가 없어서 참는다>, <화장까지 다 했는데 걸려온 전화, 나 오늘 못 만나>, <엄마 만원만>, <기억이 안 납니다>, <내 꿈에 오지 마세요>, <죽 쒀서 개 줬다>. 상황에 맞는 글자를 넣어 전체 작품에 유쾌함을 선사하고 조형미를 극대화했다. 톡톡 튀기도 하고, 때로는 과격한 글귀가 곁들어지기도 한다. 이런 글귀 때문에 작품 전체적 감상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그녀의 글은 그림과 동일한 선상에 있으며 시각적인 면에서도 서로 도와주고 있다.
작품 속 글과 그림은 표면적으로는 가볍고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지만 그러한 가벼움을 이끌어 내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기쁨, 아픔, 슬픔 등의 형태로 오는 삶의 여러 가지 느낌을 경험하고, 응축하여 그녀만의 방법으로 재치 있게 분출하여 해학적 승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힘들고 지친 일상에서 재미있는 말 한 마디 툭 던지면서 스스로 상황을 극복하는 힘을 이끌어 내기 까지는 내면을 살피고 다스리는 많은 고민의 시간이 요구된다.
동양화로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먹 번짐을 생각하거나 여백의 미를 생각하기 쉽다. 이렇게 색이 진하게 들어간 동양화도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그러나 잘 알려진 옛 그림, 민화나 궁중장식화, 신윤복이나 신사임당의 그림 등을 떠올려 보면 다양하고 예쁜색이 곱게 채색되어 있다. 동양화 역시 다양한 기법으로 작가의 개성을 표현해낼 수 있게 한다.
색채가 선명하고 강렬한 그녀의 그림일기 작품은 장지에 분채로 채색하는 전통 채색화 기법으로 그려진다. 분채는 동양 전통의 가루 물감으로 아교와 함께 칠할 때 칠하면 칠할수록 선명한 색을 보여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채색을 한 뒤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리고 또 다시 채색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작품의 내용에 대해 곱씹어 보고, 자신을 돌아보곤 한다는 그녀는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더해지고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깊은 감성과 색감이 묻어나는 작품은 그녀
의 그림에 대한 정성과 27년의 삶이 담긴 결과물이다.
그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일기의 내용들은 모두 실제의 경험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감상자에게 더욱 강력하게 전달된다. “겪어보지 않은 감정을 어떻게 그리고, 해보지도 않은 사랑을 어떻게 거짓말로 표현하겠어요?”라고 말하는 그녀는 늘 거짓말하지 않는 그림, 참된 그림을 그리려 한다. 그것이 그녀의 그림일기이다.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60.5 x 60.5cm 장지에 채색 2009

신세대 동양화라는 사람들의 평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겠죠. 그렇지만 지금은 분명 2009년이니 전통을 바탕으로 지금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우리가 하고 있는 것도 세월이 지나면 전통이 될 거에요. 과거에 살던 사람들은 그들이 사는 세계를 그리고, 당시 자신들의 느낌을 표현했을 거에요. 저도 그러고 있어요. 자꾸만 분류하기 보다는 그냥 그림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지만 굳이 물어보신다면 이런 까닭으로 제 그림을 한국화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녀는 당분간 이런 형식의 그림일기 작업을 이어나갈 것이며 시간이 지나도 그림일기에 대한 관심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림에 글을 쓰던 이미지만을 그려 넣던, 무엇을 그린다 해도 그 모든 것이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그녀의 그림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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