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RTS

작가

작가 인터뷰

문혜린
꿈꾸다
2009.10.04

인터뷰 날짜 : 2009.06.05
인터뷰어 : 나비
글 작성자 : 나비

문혜린, 그녀가 그리는 것은 물고기다. ‘그냥’ 물고기가 아닌 ‘꿈꾸는’ 물고기.
어느 날 아침, 러시아워에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향해 가는 것을 보고 적잖게 놀랐던 그녀는 그 모습이 마치 물고기가 무리 지어 다니는 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일하러, 공부하러, 각자 자신의 길을 찾아 가던 그 모습이 우리에겐 각박한 현실일지 몰라도 그녀에게는 꿈을 찾아가는 모습 같아서 오히려 행복한 풍경처럼 보였다고. 그 행복한 풍경은 물고기 무리가 되어 캔버스에 옮겨졌다. 그녀가 창조해낸 유토피아적인 공간 안에서 우리는 그렇게 물고기가 되고, 그녀 역시 물고기가
된다.
물고기는 그녀에게 시공간을 초월하여 꿈을 가능하게 하는 분신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물고기를 통해 그녀의 꿈과 현재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 반지와 함께 청혼하는 물고기, 면사포를 쓰고 있는 웨딩물고기 등 로맨틱한 물고기가 등장하는가 하면 이름마저도 너무 예쁜 면봉나무, 솜사탕 나무와 함께 물고기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풍경 마저도 그녀의 손에 의해 부드러운 이미지들로 탄생하면서 말 그대로 ‘꿈꾸다’가 된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니라 꿈이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족을 꿈꾸다 40 x 40cm mixed media 2008

그녀의 작품은 물방울을 상징하는 원형 캔버스와 다양한 오브제들로 인해 장식적인 효과가 두드러진다. 물고기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크라운시리즈에서도 보석과 레이스 등이 사용되었고 이로 인해 더욱 일러스트적이면서 여성스러운 느낌이 난다. 스토리만 해도 그렇다.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을 해서 행복해지는 일련의 과정들은 여자라면 누구나 꿈꾸고 상상하는 이야기들이다. 비록 작품에서는 물고기들이 대역을 하고 있지만. 20대 후반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느낄 수 있는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그녀 역시 일과 사랑, 연애와 결혼 등 현실적인 문제들로 고민한다. 이러한 고민들을 나누고 소통하는 데에는 그녀의 좋은 친구들이 한 몫 한다. 이성과는 다른 유대감이 존재하기에 밤새 이야기해도 항상 시간이 모자란 것이 그녀들의 우정이다. 그녀는 다행히 친구들이 모두 그림을 그리다 보니 얘기도 더 잘 통하고, 인생의 동반자 같기도 해서 친구들 자체가 너무 큰 재산이라며 밉지 않은 자랑을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녀가 속해있는 ‘도모’라는 그룹은 상당히 소중하다. 2007년을 시작으로 마음 맞는 동기생들과 함께 정기적인 기획전을 갖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구성원들이 모두 여자라고 한다. 미술이라는 같은 꿈을 추구하면서 서로의 고민도 귀담아 들어 주기에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여성들만 모인 것이 오히려 더 잘 된 것 같다는 것이 모두의 의견이다. ‘도모’는 ‘도모하다’에서 생각해 낸 말로 ‘드로잉’이란 의미가 있으며 더 넓게 생각하면 ‘그리다’가 되어 결국은 그녀들의 꿈을 나타낸다. 드로잉하고 그리면서 앞날을 ‘도모’하는 것. 지난 2년 사이, ‘도모’의 멤버들은 어느새 다들 자신의 앞길을 찾아 흘러갔고 또, 흘러가고 있다.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물고기처럼. 다양한 꿈을 갖고 자신의 꿈을 찾아 가지만 ‘도모’가 원하는 궁극적인 꿈은 모두 끝까지 그림을 그리고 좋은 작가로 남는 것이 아닐까.

요즘에는 평면에서 헤엄치던 물고기를 입체로 표현하기 위해서 설치 작업을 계획 중에 있다. 바다 속에서 물고기 무리를 만난 듯한 감동이 와닿게 하려면 물고기 무리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서 작품에 필요한 물고기 틀을 짜고 있다고 하는데 그 틀이 완성 되면 물고기를 ‘그리지’ 않고 ‘구워’내야 한다고 한다. 붕어빵 만들 듯이 구워서 완성하고, 구워서 완성하고. 아마 지금쯤 작업실에서 혼자 물고기를 계속 굽고 있지 않을까?

꿈꾸다 No.1 40 x 40cm mixed media 2008

“첫 발을 땔 때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했는데, 한 걸음 내디딜수록 점점 무거워짐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그림은 가볍고도 무거운 공간이며, 또 자유로우면서도 구속될 수 있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 공간으로, 그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풀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됩니다.”

지금이 시작인 그녀는 앞으로 더 발전하기 위해서 남과 비교하지 않고 너무 무리한 욕심 없이 오직 캔버스와 차근차근하게 대화하겠다고 했다. 이야기하면 할수록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작가, 문혜린. 꿈꾸는 물고기를 그리는 그녀의 진정한 꿈은 손에서 붓을 잡을 수 없을 때까지, 끝까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녀의 꿈이 캔버스에 항상 펼쳐지길 바라면서 앞으로 전시 공간 자체가 모두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 그녀의 상상력 넘치는 작품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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