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얼마 전 홍대 산토리니 갤러리에서 진행한 초대 개인전에 관한 이야기부터 듣고 싶습니다. 산토리니 갤러리 공모에 당선되어 그리스 산토리니에서 한달 간 생활하셨는데, 산토리니에서의 생활과 전시 작품에 대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A. 저는 어릴 때부터 자주 여행을 하였습니다. 여행은 제게 있어서 자유를 향한 출구이며, 삶의 원동력입니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곳에서 보는 모든 것들은 저의 생각과 시야를 한 단계 열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 2011년 6월 한 달간 그곳에 살면서 산토리니 원주민이 된 듯 생활했습니다. 한여름밤의 꿈처럼 두근대는 설레임을 느끼며 동화 속의 주인공처럼 지냈습니다. 짙은 코발트 빛 바다, 절벽 위의 집들은 강렬한 햇살을 통해 찬란함을 자랑했습니다. 코발트 빛과 하얀색의 어우러짐은 닿을 수 없는 아득함이고, 만질 수 없는 신비였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마음을 담그고, 시야에 하나하나 대상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내 존재의 의미를 명확하게 만들어 주었고. 작업하며 되새겨지는 그곳은 아직도 내게 선명합니다. 풍경에 대한 애착이 또 다른 나를 얻게 했고, 내게 제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산토리니에 대한 인식을 주기 위해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부터 작업을 진행해 갔습니다. 석양이 아름다운 이아마을, 덩키(당나귀)가 유명한 피라마을, 그리고 마을 전체를 동화로 만들어 버린 건물들, 소소하면서 일상이 된 그들을 보러온 사람들과 그들. 뜨거운 태양볕은 그들의 청아함과 순수함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산토리니를 통해 자연이 가르쳐 주는 대로 거스를 수 없는 자연 속의 나를 느꼈고, 그것을 모방하며 자연을 흉내 내며 자연과 같이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에 흠뻑 빠지며 지냈습니다.
실제로 대상을 관찰하고 작업했기 때문에 세세하게 그곳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직접 현지에 머물며, 종이와 연필을 들고 직접현지에서 느끼며, 그리기 시작했을 때 드러나는 모습들은 내가 그곳에 있음을 정확히 인지시켜주었습니다. 마치 내 감정의 보물찾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절벽 위에 걸쳐진 듯한 모습으로 끝없이 이어진 건물들은 한 마을의 공동체로 산토리니의 향이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Q.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사용해 그리시는데, 전작들에 대한 소개도 부탁합니다.

A. 내가 존재하는 곳 가까운 곳에서부터 작업이 시작됩니다. 대학 시절에는 내가 다니는 길, 성당에서 교사로 활동하면서 함께한 아이들에게서의 순수한 마음을 다시 깨달아서 인물 작업을 졸업전까지 이어갔고, 그 이후는 내가 다닌 공간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여행을 통한 작업’을 하게 된 것은 2007년, 여주에서 도자기 공부를 하며 그곳을 기억하고자 기행(紀行)적 차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머무르고 있는 방, 부엌, 욕실 등 실내공간을 그려내었고, 그 이후 내가 다녀간 곳에 대해 기억하기 위해 작업으로 이어졌습니다.
여러 나라와 한국의 다양한 지역을 방문하는 여행은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목격할 수 있었고, 이는 본인 자신의 작가적 태도와 작업의 주제로써 진중하게 자리를 잡게 하였습니다.
가장 큰 맥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색’을 통해 즐거운 에너지를 주는 것입니다. 제 주변을 이루고 있는 그리고 함께하는 공간 속에서 느낀 감동을 그림으로서 표현하고자 합니다. 주로 제가 머무른 공간의 기억으로 시작되고, 사람만 있거나 하는 소재들은 부분의 확대에서 편안하게 작업을 하는 쪽으로 이어가게 됩니다.

 

Q. 부모님께서도 그림을 그리신다고 들었습니다. 집안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예술적일 것 같습니다. 분위기나 대화가 여느 집과 다르다고 느끼신 점이 있으신가요?

A. 늘 어릴 적 집 분위기를 생각하면 클래식 음악, 한국 LP, 먹 향이 배어 있고, 동양화 재료들과 커다란 화선지가 집에 가득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집과 놀이터가 주로 일상이었기에 커가면서 다른 친구들의 집을 놀러 갔을 때 우리 집이 좀 특별한 분위기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겐 익숙한 공간이기에 그것이 당연했고, 즐기고, 늘 함께 하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작업의 길로 들어가게 되니 작업을 하면서 중간 과정에서 잘 풀리지 않거나 고민이 있을 때 작업의 방향과 아이디어를 얻는 것에 있어서 좀 더 쉽게 접근해 갈 수 있었습니다.

 

Q. 바쁜 2012년을 보내고 계신 것 같습니다. 올해의 일정을 간단히 이야기해주세요.

A. 개인전을 마치고 인천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외국탐방단에 선정돼 대만, 홍콩 민간 거버넌스 탐방을 다녀왔습니다. 그것에 대한 결과집과 그곳에서 바라보았던 풍경을 작업하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12월 13일부터 19일까지 부평아트센터 꽃누리 갤러리에서 추가적인 작품을 선보일 개인전이 잡혀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살고 있는 인천을 다시 돌아보기 위해 역사지, 문화지를 다니며 그곳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세히 알아보고, 그려낼 계획이 있습니다.
올해는 논문작업을 마치고 자유롭게 작업을 펼쳐 나가고자 합니다.

Q. 작가님의 작품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A. 작품에 등장하는 여행풍경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등장인물과 인물의 시선과 관점 그리고 움직임을 통해 작품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그래서 여행을 다니며 보고 만난 사람과 그들에게서 얻게 되는 정보와 이야기는 작품에서의 중요한 네러티브를 구성하게 되고 또한 모티브가 됩니다.
여행이란 소재는 때로는 개인적 콘텍스트로 접근될 수 있기에 여행의 의미, 기록, 풍경을 꾸준히 연구합니다. 여행풍경 속 인물을 나타내는 방법에는 사람과 더불어 하나라는 생각과 조화를 지향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입장을 갖습니다. 또한, 낯선 환경을 기록하고 그려내는 이유와 여행풍경을 주제로 여행과 기록의 관계성을 짚어보는 데 노력해 왔습니다.
이론적 연구에서 사찰, 한옥, 단청, 기와 등의 전통 문양들의 연구를 통해 이를 차용하거나 변용하며 사용하기도 하고, 오방색과 팔괘 등과 같이 도교적 선 사상이나 주역 등에서 비롯된 동양적 상징을 자연 환경적 요소들과 결합하여 적용합니다.
방법론적인 연구로는, 다시점(多視點) 산수의 방법론을 취하는데 이는 자유롭게 시점을 이동해 가면서 사물을 관찰하고 풍경을 포착해 다양한 시각의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색채를 통한 표현은 본인의 심상(心狀) 연구를 통해 즉흥적 감정과 잠재된 의식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방법으로 적용됩니다.
이러한 시점의 문제와 심상적 색채 표현은 의미상 추상적일 수 있으나 그렇기에 더욱 응물상형(應物象形-형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의 태도를 견지합니다. 재료과 기법면에서는, 주로 장지에 분채와 석채를 사용함으로써 켜켜이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제작하는데, 이는 여행에서의 풍경, 사람, 인물, 기억, 정보 등이 기행(記行)이라는 측면에서 기록의 축적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작품에 드러나는 선(線)은 선의 자율성을 통한 내면의 정서적 표출이며, 선을 통해 감정과 기운의 흐름을 화면에 기록함으로써 하나의 궤적이자 자취로 남습니다. 선의 굵기, 속도 등의 운필의 변화를 통해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Q. 그림을 그리는 일 외에 취미나 즐기는 것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A. 어느 순간부터 삶이 취미로 이루어져 일이 된 것 같습니다. 제 삶은 크게 그림, 여행, 종교, 운동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것들을 동시에 하면서 모든 상황을 작업으로 그리고 표현합니다. 제가 즐기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것을 시각적으로 기록해 작업으로 남깁니다.
여행을 통해 그곳에서 받은 영감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주일마다 종교생활을 통해 그곳에서 치유되는 마음과 성화의 이미지를 벗 삼아 수행의 과정을 느끼며 그림으로 표현하고, 요가를 통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치유합니다. 그래서 그림을 보는 이로 하여금 좀 더 밝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게 전달하고 싶습니다.

Q. 영향을 받았거나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으신가요?

A. 장래 희망은 선생님이었어요. 하지만 중3 때 IMF를 겪으며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가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해나갈 수 있는 것이 그것은 그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그림을 한번 그리기 시작하면 하루 반나절 이상 일어나지 않고 작업에 몰두하는 저를 보고, 내가 이걸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이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동양화의 길을 걷게 되고, 생활 속에 접근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은 훈데르트바서, 가우디, 르누아르, 등 밝은 색감 그리고 실생활에 작업이 함께 들어간 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Q. 현재 대학원에 재학중인데, 뒤늦게 진학을 결심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예술 활동은 구체적 근거와 맥락이 필요합니다. 막연하고 관행적인 창작과 활동은 그저 그 자체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예술의 의미와 가치는 누구와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탈 맥락적인 미술관에서 일반적인 관객과 만나는 경우와 긴급한 현안에 맞닥뜨리고 있는 현장에서 만나고 있는 미술이 다르듯,
창작의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됩니다.

저은 한국에서 전문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그 어떤 교육의 커리큘럼에서도 신진작가로서 미술계에서 다양한 역량들을 키워가며 자생성을 가질 수 있는 교육의 커리큘럼은 접해보거나 배워보질 못했습니다. 학교 졸업 이후 사회에서 신진작가로 활동하지만, 그 누구도 이러한 접근 방식에 대해 조언을 해주거나 도움을 받아 작가적 역량을 키우기가 어렵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작은 문제의식과 함께 ‘여행 혹은 기행’이라는 방법론적 수행을 통해 소극적으로나마 작업에 현장 혹은 공간특성에 접근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신진작가로서 새로운 도약을 위해 본인 스스로 작업을 위한 문제의식과 더불어 방법론 등 종합적인 재점검과 이에 따라는 작가적 역량 강화의 필요성을 인지하기에 이르렀다.
좀 더 이론적으로 공부하고 작업에 대한 많은 의견을 공유해 보고 싶었습니다. 현장의 분위기와 계속 작업을 이어가고 싶어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Q.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A. 불경일사 부장일지(不徑一事 不長一智 : 한 가지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가 드러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낯선 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작가로서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듭니다. 여행을 통해 다녀간 장소에서 문화와 삶의 방식에서 풍경과 공존하는 사람들은 다양함을 보고, 저에게 익숙한 곳과는 또 다른 문화로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낸 아득한 아름다움에 대해 관객으로 하여금 상상하게 합니다. 그 상상은 또 다른 세계로 열려있어 또 다른 길을 열어가게 되지요.
내가 머무른 장소의 공간에서 시작해 현재는 인천을 비롯한 다양한 지역 여행(탐방)을 통해서 더 넓은 공간을 그려가며 작업하고 그렇게 체험한 장소의 기억과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작업한 그림이 그림에서 그치지 않고 일상생활 속에서 작품과 대중과 하나 되는 삶을 추구합니다.
인천에서 나고 자라 인천을 기록하고자 하는 계획을 구체화 시켜서 표현할 예정입니다. 인천이라는 한정된 장소가 아닌 우리나라에서 공간성과 역사성을 부각하는 곳을 중심으로 작업해 외국에서도 관심을 둘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렇게 지역 탐방과 지역연구학습을 일종의 여행이라 단정하고, 여행풍경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인물의 시선과 관점에서 작가 혼자만이 바라보는 것이 아닌 등장인물의 움직임을 통해 작품 안의 이야기를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여행을 다니며 보고 만난 사람은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겁니다. 여행풍경 속 인물을 나타내는 방법은 더불어 하나라는 생각과 조화를 지향하는 정신에 대해 연구해보고 여행공간이 가지고 있는 풍경과 인물들의 특징을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