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2011년에 이어 올해도 개인전의 제목이 `urbanism`이었습니다. 전시명에 부여된 의미가 궁금합니다.

A. 작품의 소재가 화장품이지만 저는 처음에 그것이 집합과 집적 형태로 배치하거나 진열대에 놓여있는 모습이 그야말로 도시의 한 단편으로 느껴졌고, 관객 또한 그렇게 느끼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단순히 작은 화장품 병이 아닌 어떤 도시의 건물-어떤 도시의 거리로 느껴지기를요.

2012년에 개인전을 한 `아르페이스 엔`이라는 전시 공간은 명동 도심 한복판 남산에 소재한 카페와 갤러리를 겸하는 복합 문화공간입니다.
2011년 개인전 때와 같은 작품이 전시된 점도 그렇고, 장소 특성상 도심의 문화공간에서 도시의 물성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연출된 전시를 보며 관객 또한 그 도시에 사는 현대인으로서 ‘Urbanism’을 느끼기를 바랐습니다.

Q.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화장품이 작가님의 작품 속 주요 소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화려한 색감을 뽐내며 진열된 화장품은 여성에게는 여러 의미로 보일 것 같습니다. 판화의 여러 기법 중 실크스크린을 주로 사용하시는 이유와 연관이 있나요?

A. 실크스크린은 판화의 기법 중 밝고 선명하며 경쾌한 색 표현이 가능하여, 생각보다 실생활의 많은 요소에 쓰이고 있습니다.다양한 인쇄물, 광고, 전광판, 표지판 등 그 쓰임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처음엔 제가 실크스크린이라는 기법 자체에 매료되어 작업을 시작했지만, 화장품을 소재로 하고, 그 다양한 색을 표현하기에 그 기법이 잘 맞아서 계속 작업하고 있습니다.
실크스크린이라는 매체 자체가 산업사회의 대량복제 시대를 위한 것이고, 소재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대량 생산된 공산품이기 때문에 매체 자체가 현대사회에서 갖는 의미와 소재가 지닌 원래의 의미가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Q. 여성이라면 누구나 화장품에 관심이 많고 기능에 따라 여러 가지를 소유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도 작품에서처럼 많은 화장품을 소유하고 있진 않을 것 같습니다. 작업 구상단계부터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저는 뛰어난 미모를 가진 것도 아니고, 외모에만 집착하고 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화장품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는 건 아니었고 다만, 언제부턴가 향수병은 모으는 취미는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격상 무언가를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 화장대는 언제나 무언가로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는데 그것의 모습이 어느 날 문득 도시의 마천루로 보였습니다.
금속과 알루미늄 소재의 화장품 병은 도심의 반짝이는 건물로 보인다는 착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을 작업의 소재로 삼고 여러 형태의 작품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화장품 병을 모으기로 결심하고 가족과 주위 지인들의 화장품 병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화장품 병이 좀 특이하거나 실제로 빌딩처럼 보일 만한 것들은 사 모으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의 기능이 아닌 형태에 중점을 두고 꽤 많은 화장품 병을 수집했습니다. 어떤 작품은 도시의 모습을 보이게 하려고 늘어놓고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여, 최대한 도시의 모습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연출하고 있습니다.
화장품 용기들의 집합된 모습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백화점이나 상점에 화장품 매장의 진열대의 풍경 또한 눈에 들어오게 되었고, 화장품 매장에 매니큐어 병들이나 립스틱이 대량으로 진열된 모습에서 도시의 획일화된 이미지와 그것이 겹쳐진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미지들을 직접 촬영하여 작업의 소스로 삼아 밑그림을 제작한 뒤 실크스크린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Q. 작가님은 나란히 진열된 `화장품`을 통해 도시가 잠재하고 있는 현대인의 욕망을 함축해 보여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화장품이라는 소재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앞서 언급했듯이 우연히 화장품 용기의 집합된 모습에서 도시의 마천루를 느끼게 되었고, 작업으로 발전시키게 되었는데, 화장품(대량생산품)들이 곧 현대 도시인의 삶과. 도시의 모습을 대변하는 소재로서 그 가치가 충분히 여겨진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화장품의 발달을 이끌어낸 욕망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 대량생산품으로 채워진 도시의 획일화된 삶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Q. 학사에서 박사까지 판화만을 전공하셨습니다. 판화를 전공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작가님께서 느끼시는 판화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A. 우연히 ‘판화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예고에서는 `디자인`을 공부했고, 2번의 실패가 있었습니다. 과정 중 `예술학`과에 관심을 두고 공부를 하려고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판화과’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저에겐 입시가 제 인생에 터닝 포인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 힘든 과정에서 그림 그리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싶기도 했었는데,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선택했던 `판화`는 디자인과 회화를 병행했던 저에게 너무나 잘 맞는 매체였습니다.
판화의 가장 큰 특징은 ‘복수성’입니다. 그리고 `판`을 `찍어내는 것`이지요. 단지 그리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그것이 찍혀 나왔을 때의 신선한 그 느낌은 판화 작업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판화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입니다. 철저한 계획을 갖고 작업을 진행해야 하지만, 그 결과물은 신선합니다. 예상치 못한 우연의 효과를 맛보게도 해주고, 예상치 못한 변수로 곤욕에 빠트리기도 합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판화의 매력입니다. 시련 뒤에 우연히 선택했고, 돌고 돌아서 ‘판화’를 하게 되었지만, 저에겐 `판화`는 가장 잘 맞는 그림을 그리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실크 스크린이라는 기법적 특성상 에디션을 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품에 에디션을 두시나요?

A. 판화의 가장 큰 특징이 물론 ‘복수성’ 입니다. 그런데 혼자서 작업을 하다 보면, 작업환경에 영향을 받고, 과정 중 변수가 많아 에디션을 많이 내지는 못합니다.

Q. 여성 작가로서 느끼는 현실적인 고민이 있으시리라 짐작됩니다. 털어놓을 수 있는 고민 한 가지만 말씀 부탁합니다.

A. 여러 고민이 많은데요. 일단 실크스크린 작업을 할 때는 스퀴지로 잉크를 밀어냅니다.
스퀴지 길이는 팔 길이, 팔의 힘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길이의 한계가 정해집니다. 여자이다 보니, 제가 사용할 수 있는 길이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작품의 크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또 유성잉크를 많이 사용하는데,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될 여성의 몸에는 나쁘다고 하네요. 주위에서 잉크사용을 조심하라는 조언을 들을 때, 미혼 여성으로서 걱정도 되고, 재료를 바꿔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됩니다.

Q. 영향을 받았거나, 좋아하는 작업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A. 홍경택 작가의 작업을 좋아합니다. 필기구나 팬, 컵, 캔 등의 단순한 일상의 사물을 캔버스 화면 전체에 강박적으로 꽉꽉 채워 그립니다. 단순한 연필의 집합이 거대하게 다가옵니다.
제 작업에서도 느끼실 수 있듯이 저는 `비움`보다는 `채워짐`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많음`, `채워짐` 안에서의 포만감과 만족. 포만감 이면의 불안감. 다 채워진 듯하지만, 그 안에서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부족함과 불안감. 많음 속에서의 어쩔 수 없는 고독함.

Q. 앞으로 구상하고 있는 계획들이 있으신가요? 말씀 부탁합니다.

A. 지금 저는 박사과정 중입니다. 일단 제 작업에 관한 논문을 완성하는 것이 제 앞에 놓인 가장 큰 과제입니다.
단지 작가의 의도로서 관객에게 작품에 그러한 제목을 부여하고 그것이 관객 또한 공감하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화장품 용기들의 집합된 모습에서 `거대도시`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다양한 작업을 계획하고 진행 중입니다. 소재와 시각의 변화를 연구 중이고, 또 언젠가는 화장품의 소재를 뛰어넘어야겠죠.

판화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로 `대량 소비 사회에서 현대인의 삶과 욕망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관한 작업을 해 볼 생각입니다.